정부가 식품산업의 글로벌화 막는 것 같아 안타까워

 

하상도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

최근 장류, 두부에 이어 면류(국수, 냉면, 당면)까지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올 1월 1일부터 5년간 ‘두부’와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 장류사업을 하고 있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앞으로 관련 사업을 확장할 수 없게 됐다. ⌜생계형적합업종법⌟에 따라 이들 5가지 품목이 첫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5년간 대기업 등은 OEM 생산을 제외한 해당 사업의 인수·개시 또는 확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의 벌금, 매출액 5% 이내 이행강제금도 부과된다.
 
장류, 두부가 왜 소상공인 생계형적합업종 품목인지 이해가 안 되는 마당에 면류(국수, 냉면, 당면)까지도 포함하려 하고 있다. 정부가 식품산업의 글로벌화에 앞장 서야 할 마당에 오히려 막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생계형적합업종’, ‘ 중소기업적합업종’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포퓰리즘적 용어다. 누구나 생계형으로 창업했다 하더라도 햄버거, 김밥, 떡볶이, 초콜릿, 사탕, 과자, 음료로 전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고, 네슬레, 맥도날드, 코카콜라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도 될 수가 있어야 한다.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한 ‘중기적합업종’ 지정(상생법)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동반 하락’ 했다고 생각된다.

이 제도는 국가 전체의 경쟁력과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영세한 소상공인들, 즉 약자를 보호해 주기 위한 일종의 복지제도라 명분도 있고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다소 부자연스럽지만, 규제를 통해 대기업의 진출을 막고, 소상공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인위적 환경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사정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대중을 의식한 정치인들이 주도해 추진하다 보니 국가 전체의 식품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도한 규제는 국민과 소비자를 보호하긴 하나 산업 성장에는 독(毒)이 되므로 ‘전략적 최적화’가 정부의 능력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코로나19 시대 1단계, 2단계, 2.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결정에 확진자 발생 수로만 판단하지 않고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을 종합 검토해 최적화된 전략적 결정을 정부가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작년 영화 ‘기생충’의 인기가 코로나19 사태까지 이어지며 라면, 김치, 장류 등 K-Food의 세계적 인기로 수출이 급증하는 이 시기에 찬물을 끼얹는 황당한 소식이다. 오히려 중소기업 적합업종 품목에서 해제된 김치의 경우,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로 첨단기술을 개발해 적용하고, 제품을 다양화해 해외로 뻗어 나가는 원동력이 됐고, 우려와 달리 오히려 중소기업과의 상생으로 이어져 김치업계가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파스타, 라면이 글로벌 음식이 된 마당에 면류가 뜬금없이 왜 생계형적합업종이 된다는 말인가? 이제야 세계에 이름을 좀 알리기 시작한 우리나라 글로벌 식품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냉면, 국수, 당면 등 면류를 고압, 압출 등 첨단 신기술로 대량 생산, 표준화해 글로벌 수출경쟁력을 갖춰도 부족한 시기에 말이다. 수타면, 면틀 뽑기 등 전통적 향수 마케팅은 국내 시장에는 어느 정도 먹힐지 모르겠지만 대량생산, 위생관리, 표준화된 글로벌 산업화에는 적합하지 않다.

대기업과의 경쟁력이 뒤지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제도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정부는 산업 진흥을 위한 상생의 틀 안에서 선순환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이 제도는 당연히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서 벗어난 다소 인위적인 특별조치다. 앞으로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해 우리 후손이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다. 이 제도로는 우리나라 식품업계에서 초대형 글로벌 면류기업이 나오기 어렵다.

당연히 지정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혹시라도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장류, 두부 사례처럼 글로벌 수출을 목표로 하는 면류제품을 제조할 때에는 신기술과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이뤄지는 신규 생산설비 구축 등을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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