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71)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민족정신의 진수 ‘우리말’ 잘 지키면서
외국어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면

세계화 과정에서 외국어가 들어와 우리 생활에서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질, 문명이 교류되고, 교역량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국제화의 기본 매체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를 포함, 아랍어도 그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아프리카나 중남미 토속어까지도 구사할 수 있는 전문인을 길러야 할 필요를 느껴, 고등 및 대학에 외국어 특성화 학교를 세웠다. 언어는 상대를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근래 부임하는 나라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외교관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몇 년 전 아프리카 한 나라를 방문했을 때 대사로 있는 분으로부터 현지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와 그 나라 정부부서나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동기, 선후배의 힘을 크게 입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나라 말은 물론이고 교우관계도 깊게 갖고 있으니 외교관으로서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국제사회에서 외국어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 외국어의 바탕은 모국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된다. 부모가 물려주신 말에 능통해야 외국어도 잘하고 이해력이 높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외국에 거주하면서 모국어를 몇 대에 걸쳐 잊지 않는 민족은 중국인으로 알려졌다. 특수한 언어구조와 자신들의 생활습관 그리고 노력도 관계되겠으나, 부모의 뚜렷한 모국어 사랑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자기 민족의 언어와 글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민족으로서 얼을 잊지 않고 계승하면서 민족의 자긍심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는 뜻이다.

근래 시내를 걸어 다니다 보면 즐비한 간판이 눈에 띈다. 외국인 왕래가 잦은 명동은 물론이지만, 외국인이 그렇게 많지 않은 길거리에도 외국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 cafe나 coffee는 아주 일반화되었고, 잘 알려진 특정 상호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심한 경우 영어 영화 제목을 외국어 발음 그대로 우리말로 써 놓은 것이다. 어떤 것은 그 뜻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또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범람하는 외국어 간판에 더해 언론이나 일반인의 글에서도 너무 많은 외국어가 사용되고 있어 우리글과 말의 오염 정도가 심각함을 느낀다. 한 언론사가 근래 아름답고 잊혀 가는 우리말을 새롭게 찾기 위하여 ‘말모이’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손뼉 치며 공감하였다. 한 민족의 말과 언어는 그 민족만이 이해하고 감정이 통하는 것이 많다.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최명희 작가의 혼불, 읽다가 보면 그 지역이 고향인 사람만이 저자가 전달하려는 깊은 뜻과 정을 정확히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에서도 지역이 다르면 자기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을 진데, 하물며 문화와 국가가 다른 민족의 언어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해온 사람들도 현지인이 구사하는 독특한 유머나 만담, 우스갯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백 년 마음속에 녹아들어 응축된 자기들의 감정을 토박이가 아닌 외국인이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 중 외국어로 번역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다고 한다. ‘정’든다고 하는데 그 정을 무엇으로 번역해야 하는지, ‘슬그머니’는 그 행동과 말에 담긴 뜻을 전달할 수 있는가. 어머니의 ‘손길’은 행동이 아니라 마음인데,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솔길’의 아득한 정서와 정취 그리고 내가 마음속에 느끼는 그 말에서 오는 감정을 같은 민족이 아니면 의도하는 뜻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한들한들’ 춤추듯 불어오는 봄바람을 어떻게 설명해야 그 정경을 전달할 수 있을까.

대부분 우리말은 행동에 따른 깊은 의미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행동만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에 함축된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체를 알기 어렵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거나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면서도 ‘시원하다’라는 말을 쓴다.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과 감정은 완전히 다르다. 호남지역에서 쓰는 ‘그리어 잉’은 대표적인 소리가 아닌 뜻이 담긴 말이다. 말의 느림과 박자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민족정신의 진수, 우리말을 잘 지키면서 외국어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암흑기, 일제 강점기에도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 우리 선조들이 목숨까지 버린 거룩한 뜻을 살려야겠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