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46)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은
어느 누구도 폐기하거나 없앨 수 없다

[식품저널] 한지를 바탕으로 그 위에 먹물이나 극히 제한된 물감으로 화가의 뜻을 나타내는 동양화는, 단 한 번의 붓놀림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수묵화로 먹과 종이의 교감에 의해서 작품이 탄생한다. 개칠(덧칠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을 닮았다. 우리 삶에서 잘 비유되듯 인생 여행에서 왕복표는 물론 없고 한순간도 뒷걸음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이 순간이 지나면 그 누구도 다시 고치거나 더 첨가할 수도 없이, 했거나 이루어 놓았던 것은 영원히 변화시킬 수는 없다. 결국, 순간과 순간이 모여서 한 삶이 이루어지지만, 그 덩어리를 쪼개고 나누다 보면 그저 한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살면서 순간 순간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사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것 하나 순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결국 고름의 연속이었다. 그 선택의 결과로 다음과 그 다음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선택에 잘했다고 만족할 때도 있었고, 다시 돌이키고 싶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족했든, 그렇지 않았든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아닌 것이 없다.

동양화를 그릴 때 작가는 머릿속에 미리 그림을 그리고 다시 생각하며 전체를 구상한다. 생각하고 구상하는 것이야 실현된 것이 아니고 어느 형태로 남는 것이 아니니 그냥 머릿속에서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일단 한지 위에 그려지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영원히 남는 자신의 작품이 된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계획을 미리 세우고 그 계획에 대한 가능성, 또는 실패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지를 생각해본다. 물론 생각하는 그 자체도 우리 삶에서 남는 것이긴 하지만 형상화되지 않고 실행된 것이 없으니 진정 내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드디어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실체가 나타나고 그 모습이 눈에 보인다. 행동 그 자체는 진행형이지만 그 행동으로 얻어진 결과는 내 것이 된다. 그래서 내가 한 행동은 결국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고 내가 떠안아야 할 결과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에 들었다 해도 결국 오늘 이 순간이 나에게 있을 뿐이다. 오늘 그리는 그림이 영원히 남고 그것이 모였을 때 내가 만들어진다. 과거는 단지 추억으로 존재할 뿐이고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의 착각이다. 진정 내 몫이 아니다. 또한, 내 의지대로 변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늘 이 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을 마음속으로 초대해야 한다. 단 한번으로 내 작품인 동양화가 완성되듯 삶이 매 순간 순간 완성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고 싶다.

과거에 집착하여 오늘의 시간을 허비해서는 아니 되고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에 기대어 오늘을 망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 순간, 오늘을 의미 있게 살면서 내 전체 삶에서 맞춰야 할 퍼즐을 하나하나 끼워 갔으면 한다. 이루어질 전체 모양을 내가 모두 알지는 못할망정 완성된 모습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겠지.

동양화와 우리 인생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수묵화의 잘못된 작품은 구겨 없애버리거나 태워버리면 그 존재를 없애 버릴 수 있다. 물론 작가의 머릿속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물리적인 형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은 어느 누구도 폐기하거나 없애버릴 수 없다. 무형의 것으로 건 유형의 것으로 건 존재하고 그 결과가 남아있다. 단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존재 그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이 세상에 남아있는 모든 저술이 우리 정신활동의 결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 작품을 그 누구도 안고 있는 내용을 바꿀 수는 없다. 자기 의견을 추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산물일 뿐이다. 모든 예술작품도 존재하는 것으로도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이 된다. 다시 고칠 수 없는 우리 삶의 발자취긴 하지만 그래도 지나온 흔적을 더듬어 보면서 새롭게 나가는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혜라고 여긴다. 오늘 이 순간을 의미 있게 살고 있는지를 다시 내면을 본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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