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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산책] 우리 삶은 발효식품을 닮았다.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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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3  09: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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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사람으로서 향기 더해가며 태도가 유연해진다

[식품저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강철도 녹슨다. 우리 삶은 물론이요,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과 물건 중 어느 것 하나 세월 속에서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물질과 생각은 변화가 본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식품도 쉽게 상하는 농축수산물을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변화가 가장 심한 것 중의 하나다.

여러 변화에서 발효는 시간과 가장 관계가 깊다. 대부분 오래된 음식은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야 더 좋아지고 상품적인 가치가 높아지는 식품도 있다. 발효식품이다. 발효로 얻어지는 식품은 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류와 함께 젓갈이 있고, 발효하여 만든 술을 놓아두면 자연히 식초가 된다. 이들 발효식품은 공통점이 있다. 때가 되어야 제 맛을 낼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깊은 맛이 베어 나온다.

김치도 시간을 두고 잘 익어야 깊고 오묘한 제 맛을 갖게 되고 간장 등 장류는 어떻던가. 오래될수록 진한 맛과 향이 나고 품격이 달라진다. 심지어 100년 혹은 200년 묵힌 간장이 명품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발효식품은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이루어진, 축적되고 응어리진 작품이다. 잘 발효되어 숙성된 우리 전통 술은 그 농익은 맛과 향기에 취하고, 오래될수록 진가가 올라가는 포도주나 위스키, 브랜디 등은 시간과 비례하여 가치가 높아진다.
 
우리 인생도 비슷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시간의 징표인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사람으로서의 향기가 더해가면서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유연해진다. 잘 익은 과실과 같이 나이 먹은 사람의 곁에서는 완숙한 인간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 드신 노인들을 존경하고 예를 다하여 대우하려 한다.

그러나 세월에 따른 나이 먹음이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발효식품에서도 모두가 발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변하여 부패되어 쓸모가 없거나 해를 끼치는 경우를 본다. 상한 포도로 술을 담그면 결코 귀한 포도주를 얻을 수 없이 변질되고 부패한, 먹지 못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다른 발효식품들도 비슷하다. 원료가 나쁘거나 발효조건이 맞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잘 관리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제품을 얻을 수 없다. 우리 인생도 어릴 때 환경이 좋지 않거나 성장하는 과정이 나쁘면 결코 완전한 인간으로 성숙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든다 해도 완숙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에 해악을 끼치거나 짐이 되는 경우를 본다.

스스로 정진하고 자신을 관리함으로서 더 나은 나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선조들에게 배운다. 여러 발효식품에서 느끼는 완숙된 맛과 향은 우리 인간에서도 느낄 수 있다. 발효식품은 물질의 변화에서 오는 자연현상이나, 인간의 숙성은 육체가 아닌, 물질에서 얻는 게 아니라 정신체계의 산물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물질의 변화는 어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정신세계의 변화는 그 끝이 없음을 안다. 세계사에 업적을 남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성현들의 정신세계는 범부가 감히 근접하기 어려운 경지로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또한 그 길을 뒤쫓아 가고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존경하는 종교계를 비롯하여 많은 성현들은 모두 기원 전 후 생존하여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셨으나 그 이후 별로 뚜렷한 분이 없으니 인간의 정신세계의 발전은 기원전에 그 속도를 멈추지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동양철학의 근간은 모두 기원전에 구축되었고 그 이후 이렇다 할 더 깊은 경지의 이론이 나타나질 않고 있다. 성현의 말씀들도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당시 구축했던 정신적 산물이 이 시대까지 계속 발효되어 새로운 경지를 구축하고 있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있는 것에 덧붙이고 더 변화시키는 것은 후세대가 할 일이지만 발효식품과 다르게 인간의 정신세계는 그 끝이 없어 가늠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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