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민 변호사의 식품법률 강의 83. 식품위생법 제9조 기구 및 용기ㆍ포장에 관한 기준 및 규격

김태민 변호사

김태민 변호사(식품법률연구소)

[식품저널] 표시는 기준 및 규격 등에 비해 안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정책은 주로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런데 소비자가 안전과 무관하더라도 반드시 알고 싶어 하는 정보가 있다고 모두 반영해 주는 것도 아니고, 산업계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최근 ‘GMO 완전표시제’에 대한 사회적협의회가 무산된 것이 대표적이다. 표시 정책을 추진하는 식약처 입장에서 소비자단체와 산업계의 주장이 첨예하다보니 한발 뒤로 물러나 양 당사자 간에 협의를 하자는 것으로, 모양새는 이상적이지만 실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에서 최선이란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GMO나 일반식품의 기능성 표시 문제처럼 한편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 한편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문제와 달리, 식품안전을 지키면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이나 법령이 있을 수 있으므로 최선의 것을 선택할 수는 있다.

최근 식약처가 주도적으로 규제 개선에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조직의 수장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런 측면에서 식품위생법 제9조에 규정된 기구 및 용기ㆍ포장에 관한 기준 및 규격에 관한 조항과 관련된 정책은 변경될 필요가 있다.

우선 기구와 달리 용기ㆍ포장의 경우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21조에 용기ㆍ포장지제조업, 옹기류제조업을 영위할 경우 관할 행정기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식품에 접촉하는 용기나 포장지, 심지어 독, 항아리, 뚝배기 등을 제조하는 영업자도 해당된다.

실제로 단속 과정에서 이런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신고 영업을 한 다수가 매년 전과자가 되고 있다. 법령을 위반했으니 마땅히 처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4000여개가 넘고 수시로 개정되는 법령을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특히 대다수의 경우 식품위생법 제9조에 규정된 기구 및 용기ㆍ포장에 관한 기준 및 규격에 적합해 안전한 것으로 판명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더욱 억울하다. 이러다보니 수사기관에서도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어 무혐의 처분을 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인력과 시간만 낭비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한 기구와 형평성 문제도 있다. 기구 및 용기ㆍ포장의 경우 식품위생법에서 정하는 안전성을 충족한다면 굳이 영업신고까지 필요하지 않다. 어차피 기구 및 용기ㆍ포장을 사용하는 식품업체가 납품을 받으면서 안전성을 검사할 수밖에 없고,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 식품업체를 처벌하면 된다.

법원에서도 안전성에 초점을 두고 비록 식품위생법에 규정된 식품용 첨가물이 아니더라도 위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었다.

서울고등법원(2014노44사건)은 “검사는 피고인들이 이 사건 원유를 제조하면서 식품첨가물용 노말 헥산이 아니라 산업용 노말 헥산을 사용했고, 추가적인 순도검사를 거치지 않아 식품첨가물공전에서 정한 식품첨가물 기준과 규격을 위반했음을 이유로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조 제1항 제2호, 식품위생법 제7조 제4항을 적용해 피고인들을 기소했고, 원심도 같은 이유로 피고인들이 사용한 노말 헥산이 식품첨가물공전에서 정한 식품첨가물 기준과 규격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중략) 일반적으로 식품첨가물용 노말 헥산이 더 많은 정제과정을 거쳐 생산하는 것을 빼면 특별한 차이가 없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데, 당심의 감정인 한국석유관리원 석유기술연구소장에 대한 감정촉탁결과에 따르면, 노말 헥산은 식품첨가물공전에서 정한 노말 헥산 성분규격의 모든 항목에 부합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중략) 검사가 적용한 같은 법 제7조 제4항의 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결국 산업용인지 식품용인지가 아니라 실제 안전성이 중요한 요소다.

식약처는 최근 공유주방을 인정하고, 건강기능식품 소분판매를 추진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수년간 제기돼 왔던 식품의 기준 및 규격에 관한 문제점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개정한다면 더욱 찬사를 받을 것이며, 당연히 안전성과는 무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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