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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산책] 아내로부터 늙음을 확인한다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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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5  10: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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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식품저널] 젊었을 때는 지금 생각하건대 아마도 내 고집이 세어서인지, 하긴 젊었을 때는 대부분 그런 성질이 있지만, 그냥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았다고 여겨진다.

결혼 후도 얼마동안 이런 내 사고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꽤 오래 그 생활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과 의견 충돌이나 갈등이 가끔 있었고, 아내와도 어떤 때는 의견이 달라 불편한 때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이 나이까지 무사히 살아온 것은 주위 분들의 넓은 이해와 가정에서는 아내가 참고 견디어 준 덕이 아닌가 하고 여기는 나이가 됐다.

이제는 큰 범주에서 내 생각과 어긋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주위분의 의견을 경청하고 집에서는 아내 말에 잘 따른다. 이게 내가 나이 들어 철들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늙었다는 징표라고 생각되니 조금은 쓸쓸해진다.

그게 조선조 황희 정승처럼 모든 사람의 의견에 수긍하면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정치를 하신 그 큰 그릇의 옆에도 가기 어렵지만, 이제 조금씩조금씩 내 생각과 내 것을 포기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나 생각 든다.

어찌 보면 여유와 포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경지가 아닐까 짐작한다. 이제 크게 고집을 부려 봤자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고, 집안일은 아내가 훨씬 잘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어찌 보면 대나무와 같은 성질이 아닐까? 한 기간(대나무는 1년) 성장하고 나면 성장을 멈추고 그저 단단해지는 과정을 거치는, 그러니 독야청청하다는 소리는 듣지만 유연성이 떨어지고, 타협에서 미숙을 넘어 무모한 경우가 많았다. 유연하고 타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 세월이요 나이이며 내자의 덕이라 여긴다.

이때가 되면 나는 이미 내 생각만을 고집할 만큼의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늙음 때문에 유연해지고 타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회생활에서 얻은 지혜의 결과인지, 아내의 잔소리 때문인지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다. 오랜 세월과 육체적인 상태가 내 의지도 약화시키지 않았나 미루어 짐작해보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들 모두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지 않았나 추정해본다.

목적한 것을 이루는 과감한 추진력과 결단이 필요한 때도 있으나,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이 결정과 더불어 같이 이뤄가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성공할 수 있는 지혜다.

한 번의 결심이 꼭 그렇게 이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것 자체가 미완성의 미숙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꼭 옳다는 확신을 갖고 성공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나이 먹으면서 느낀다.

더욱이 개인에 관한 일로 한 결심과 행동은 그 결과가 개인으로 한정돼 피해나 혹은 이익이 온다하더라도 개인으로 한정되나, 사회나 국가에 그 영향이 미치는 결정일 때는 심사숙고하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정책은 안되면 다시 해볼 수 있는 실험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께서 조세제도를 개편하는데 백성의 의견을 수렴하고,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10여 년 동안 검토와 수정을 했다는 것이 기록에 나와 있다. 이것이 애민의 극치다.

근래 너무나 급속한 변화와 이에 따른 부작용이 자꾸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참을 줄 알고 넓은 귀를 갖고 여유로움과 경륜이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발탁해 쓰나 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자기주장이나 객기보다는 자신을 스스로 볼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떠도는 말로 진인사대처명(盡人事待妻命)이라는데 이제는 아내의 말을 경청하고 따르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나이가 됐다. 이는 내 늙음을 스스로 알고 옹고집부리지 않고 모나지 않는 원만함의 입구에 들어섰다는 생각, 더 솔직히 얘기하면 늙음의 징표임을 내가 잘 알고 있다는 표현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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