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19)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식품저널] 넓은 들에 초록 벼가 한창이고, 뒷산에는 짙푸른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숲을 이루고 있다. 내가 힘들여 정성껏 일구어 놓은 텃밭에는 상추와 아욱, 고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호박꽃이 반갑게 맞아주는 전원생활,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보고, 이런 곳에 살고 싶은 욕망이 인다.

잉어가 된 아들을 살려준 어부에게 아버지인 용왕이 감사의 마음으로 소원을 들어줄테니 말해보라고 했단다. 어부는 그저 나름대로 소박한(?) 희망을 말했다. “앞에는 깨끗한 개울물이 흐르고 향기 좋은 술상이 준비된 정자에 앉아 거문고를 뚱겼으면 한다”고. 용왕께서 “이놈아 그런 곳이 있으면 내가 가겠다“라고 호통을 쳤다.

물 좋고 경치 좋으며 한가하게 놀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느 데도 없다. 인간이 태어날 때 이미 평생 할 노동의 짐을 잔뜩 지고, 힘들게 살도록 운명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깨우친 분들은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마라“고 호통을 치시지 않았는가. 단지 그 짐을 기분 좋게 감당하면서 즐기느냐, 또는 불평하며 거친 숨을 쉴 것이냐에 따라 내 삶 전체의 질을 좌우할 뿐이다.
 
근래 여러 이유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자의에 의한 귀촌, 귀농도 있으나 도시에서 마땅히 어울리는 일자리가 없어 비교적 쉽게 일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농촌으로 발걸음을 떼어 놓는 귀농 인구가 많아진다고 한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농촌 취업자 수가 11만 명으로 치솟았고, 올해 들어 지난 1월 농어업 취업자 수가 10만7000명(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9.3.2.)에 이르며, 이 중 돈벌이가 없는 무급 가족 종사자가 5만4000명으로 절반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일자리 사정이 나빠 집안일이라도 돕는 농촌 가구 인구가 늘어난 현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들은 꿈에 그리는 전원생활과는 거리가 멀고, 어찌 보면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으로 잠시 귀농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과는 친하게 되어 있다. 인류가 이 지구에 나타난 250만 년의 대부분은 자연에서 모든 것을 얻는, 수렵·채집으로 생을 유지하였으니, 어찌 자연을 뒤로하고 살 수 있었겠는가. 우리의 유전인자에는 이미 자연친화적인 습성이 배어 있고, 이를 결코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전원에 가거나 숲으로 우거진 산으로 등산, 혹은 좋은 경치를 접하면 즐겁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도시에서 태어나고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푸름이 옷깃까지 물들일 것 같은 초원에 들어서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욱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 들녘에서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하면 정서적으로 불행한 사람이지 않을까 여겨진다.

나도 은퇴를 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게 되었을 때, 내 로망이었던 젊은 날을 보냈던 농촌으로 돌아가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데, 이 어찌 내 의지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결혼하여 온 정성 다하여 자식 키우고, 별볼일 없는 나를 큰 불평 없이 근 50년을 보살핀 아내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답은 나 혼자 들어가 살라는 단호한 의지 표명이다. 아무리 전원생활이 마음에 든다 하더라도 이 나이에 혼자 생활할 용기는 없다.

아내가 전원생활을 피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모기나 여러 종류의 벌레와 친하지 않은 것이다. 이상하게도 같이 있어도 모기들이 나는 공격하지 않으나, 아내는 집중적인 표적이 되어 쏘일 때마다 손발이 부풀어 오른다. 이 이유를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조상 대대로 농촌에 살면서 지금의 모기 조상들에게 많은 보시를 했으니, 모기 사회에서 은덕을 많이 입은 이 분은 공격하지 말라고 회람이 돌았다고.

어떻든 아직도 전원생활의 간절한 꿈을 지우지는 않았으나, 그냥 머릿속에서만 설계하는 허튼 몽상이 아닐까, 초조한 마음이 드는 요즈음이다. 전원생활,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이룰 수 없는, 어려운 여러 조건이 맞아야 이룰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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