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17)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식품저널] 지구에 사는 많은 동물 중 인간만이 상대를 배려하고 협력할 줄 안다. 하긴 짐승도 자기 새끼를 키우고 먹이를 주고, 때로는 가지고 있는 것을 양보하는 사례도 있긴 하지만, 본능이 발동되는 제한된 기간에 한정되어 있다.

인간은 생명이 있는 한 자기 친족뿐만 아니라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내 것을 양보하기도 하고, 나를 희생시키면서 상대를 이롭게 하는 일이 있다. 원래 가지고 있는 본성인지, 아니면 교육에 따라 후천적으로 얻은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원래 본성(싹)이 있었고, 이 싹에 물을 주어(교육), 그 특성을 키운 결과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작은 예로 자기 앉은 편한 자리를 노약자에게 양보하거나, 넘어진 애를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일으켜 세우고 다친 데는 없는지 살피는 것을 당연한 일상으로 생각한다. 좀 더 넓게 보면 나라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자기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전 재산은 물론이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아랑곳하지 않는 경지를, 우리는 역사에서 생생히 배우고 있다.

다른 사람이 겪는 삶의 어려움이나 아픔이 나에게 전달되어 그 고통을 나누고자 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본래 마음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느끼고 행동하는 강도와 양상은 다르나 이는 협력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오랜 기간 축적된 본능에 기인하여 인간의 유전인자에 각인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어찌 보면 본능화된 것이리라. 이 배려와 협력본능이 인간이 다른 동물을 제치고 지구의 주인이 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근래 생활 여건 등 여러 이유로 우리 삶이 변하다 보니 인간의 본성인 배려와 협력, 상대를 위한 관심의 강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특히 어느 일에서나, 주어진 상황에 따라, 너와 나의 마음이 오고 가는, 공감의 정도가 우려할 정도로 낮아지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 처한 상대와 같은 느낌을 통하여 그 아픔을 나도 함께 느껴야 하는데, 그 느낌을 전달하는 수단인 공감하는 강도가 약해지고 있으며,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는 수단인 대화의 통로마저 계속 막혀가고 있다.

남이야 어떻든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고, 끼리끼리 한정하니 ‘나’ 중심이 되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게 되니, 스스로 나만 있는 외로움의 틀 속에 갇힌다. 배려하고 협력할 상대를 없애버리니, 감정 없이 기계에 불과한 휴대전화에 몰입하고 컴퓨터 속에서 나의 말 상대를 찾으려 한다. 기계와 소통은 배려가 아니라 일방적인 메마른 정보교환이고, 마음과 감정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남이 나에게 호응해 주기를 기대한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배려와 협력의 숭고한 감정이 흐려지고 있고 그 정도가 크게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 가지 기대하는 것은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은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자정작동으로 다시 균형을 잡았다. 상대를 배려하고 협력하면서 아픔을 나누는 고귀한 인성을 다시 찾아, 사람이 사는 사회로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해본다. 관심과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나에게 피해가 돌아와 집단에서 소외되었다는 현대인의 소외공포를 앓게 되고, 이 고독감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확대된다.

소외공포를 치료하는 방법은 기계가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길밖에 없다. 배려와 협력은 마음과 마음의 교류이다. 인간관계는 관심을 쏟고 서로의 처지를 바꿔 생각해야 진전된다. 대화의 단절은 외로움을 불러오는 지름길이다. 솔직한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고 협력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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