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14)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지나온 시간의 궤적은 나만이 만들어 놓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순수한 창작품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식품저널] 사람에 따라서는 나이 먹어서 한 번쯤 젊은 날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바람을 말하기도 한다. 전혀 불가능한 일이지만 한 번 바란들 무엇이 나쁘랴? 나는 만약에 그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나이를 먹다 보니 가끔은 지나온 내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회상을 하기도 한다. 왜정 말기에 태어나 해방을 맞았고, 6.25 전쟁 중에 책상도 없는 교실 마룻바닥에 앉아 폭격기 소리를 들으며 겨울눈을 벗 삼아 초등학교 저학년을, 불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지냈다. 지나 놓고 보니 그렇게라도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 그게 바탕이 되어 중학교를 거쳐 대학, 그리고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밑거름이 되었다.

입시가 있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몰래 공부한 과외수업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고, 여기에는 항상 어머님이 싸주셨던 도시락(당시는 벤또라고 불렀다)이 생각난다. 우리 형제들과 사촌들까지 들고 가야 할 7~8개 도시락을 새벽같이 준비해주셨다. 아무런 감사의 마음 없이 들고 뛰던 생각, 여름에는 꽁보리밥에 장아찌ㆍ김치가 전부인 반찬, 책보에 묶은 도시락이 내 공책과 교과서를 김치국물로 얼룩 지게 만들었다.

한 학기 그 흔적과 함께한 기억들, 지금 생각으로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오랜 생을 살고 난 지금 그때로 돌아가고 싶겠는가? 상황이 더 좋아지리라 여겨지는 확신도 없는데, 대학교 생활은 어쨌는가? 시골에서 유학한 학생들은 조금 여유 있으면 자취, 그렇지 않으면 가정교사가 최고의 기회였고,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대였다.

도시에 유학하는 대다수 학생은 등록금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으나 운 좋게 장학금을 받으면 축복이라 여겼고, 그게 얼마나 큰 혜택인지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고 그냥 생활했다. 하긴 어떤 것도 가능하리라 여기고 불편을 불편으로 생각하지 않는 젊음이 참으로 부러운 추억으로 남는다.

군대 생활은 어떤가? 군대 마친 지 60년이 지난 얼마 전까지도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는 꿈을 꾸면서 답답해하기도 한다. 이는 나만의 허튼 꿈이 아니고 제대한 많은 동료가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운 좋게도 제대 후 직장을 바로 잡고, 생활하는 과정,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내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폭넓게 공부하고, 실험하고 업계에 계신 분들과 의견을 나누고, 그게 바탕이 되어 대학 강단에 서서 젊은이들과 학문을 얘기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삶의 과정에서 아쉽고 실수한 것도 떠오르나, 보람되었던 것도 함께 있으니 아쉽지는 않다.

지난 과거의 고착된 필름을 수정할 수 없는 것이 한 번뿐인 우리 삶이 아닌가? 지금 되돌아가서 고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걸 고치려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자신도 없고, 이룬 업적에 더할 자신도 없다. 지금 이대로 과거는 잊은 채, 남아있는 앞으로 생을 더 보람 있게 맞이하고 싶다.

지난 날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은 실수를 만회할 수 없다는 것도 있지만, 내가 이미 지나온 시간의 궤적은 나만이 만들어 놓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순수한 창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유일한 내 작품에 다시 손을 대서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붓글씨와 동양화는 개칠이 되지 않는다. 화선지에 한 번 쓴 글을 다시 고치지 못하듯 내가 지나온 삶도 그 누가 다시 고치겠는가? 그 작품대로 나만의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생을 마감할 때 같이 스러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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