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5)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식품저널] 사람에게 귀는 둘이고, 입은 하나다. 이는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창조주의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 이청득심(以聽得心)이란 말이 있다. 남의 얘기를 잘 들으면 상대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말 많은 사람은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쏟아 놓는 많은 말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본인은 물론 듣는 사람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말 때문에 일생을 망치거나 신뢰를 잃어 사회생활이 어려운 사례도 본다.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내 의견과 다른 말을 할 때, 이를 부정하고 반박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일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남의 얘기를, 성의를 다하여 잘 듣고 나서 전체를 종합한 후 내 의견을 전달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

나이가 젊고 조금은 잘난 체를 할 시기에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하고, 남의 얘기 중간에 끼어들어 전체 흐름을 망치는 사례를 종종 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구에 “차지 않는 물병에서 촐랑거리는 소리가 나고, 빈 수레가 시끄럽다”고 한다. 낮은 개울물은 소리를 내나 큰 강은 소리가 없되 많은 물을 품고 있다. 지자무언(知者無言)이요 언자무지(言者無知)라고 했던가. 아는 사람은 말수가 적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말이 많다는 것은 아주 적절한 얘기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말을 줄여야 하는데, 말이 많아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사례를 본다. 젊은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면서 필요한 때만 내 의견을 짧게 조언해주면 어른으로서 품격을 지킬 수 있으련만, 노인의 수다같이 빈 강정은 없다. 스스로 알고 자제해야 할 터인데, 아마 노쇠하면서 분별력이 떨어진 것이 원인인가보다.

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참으로 큰 축복이요, 큰 힘을 갖는 수단이긴 하나 잘못 쓰면 모든 축복을 재앙으로 바꿔버리는 양날을 가진 칼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하여 말 한마디로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으나 그 반대로 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살아갔으면 한다.

듣는 기술은 책을 읽는 것과 상관이 있다. 책은 나에게 소리 없는 말을 하지만 듣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을 듣고 새기며 나대로 생각하는 여유를 준다. 마음속으로 듣는 과정에서 나에게 판단할 여유도 주기 때문에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저자와 대화가 나름대로 열심히 듣는 연습을 하는 기회도 되니 이 또한 얻는 것이 많다고 여긴다.

듣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다.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저자와 함께 깊은 뜻을 나눌 수 있고, 또 다른 상상의 나래를 안겨준다. 그래서 많은 성현은 글 읽기를 권장하였고, 글 속에서 나를 완성하는 길을 찾았다. 최근 열풍이 불고 있는 휴대폰과 컴퓨터는 시각을 자극하는 데는 효과가 있으나 사고의 깊이를 더해주지는 못한다. 휴대폰 잡은 손에 책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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