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다. 어디를 가나 낙엽이 흩날리고 쌓여있다. 발길에 스치는 낙엽소리가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나는 낙엽이 쌓인 산길을 좋아한다. 어느새 산길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나무들은 옷을 벗고 있었다. 가을바람이 한바탕 불어오면 낙엽은 허공으로 날아가 어느 한 곳에 모인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곳은 이불처럼 아늑하였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 방석에 앉아 지나간 세월의 강물을 뒤돌아본다.

1. 처음 산행을 배우던 산
수원에 위치한 광교산은 내가 처음 산행을 배우던 산이다. 주말이면 가끔씩 찾던 곳이다. 이 산에는 수많은 산행 코스가 있지만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오늘도 나는 여기서 광교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산기슭의 붉은 단풍나무 몇 그루는 아직도 고운 치마와 저고리를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산기슭을 벗어나 언덕의 산길을 조금 오르면 산비탈의 나무들은 모두 옷을 벗고 시원한 만추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산길엔 온통 낙엽의 세상이 되었다. 봄날의 연초록 잎사귀와 여름날의 녹엽을 이야기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세월의 강물은 흐르고 또 흘러가버렸다.

세월의 강물을 더듬으며 산길을 오르니 오늘 오를 첫 번째 봉우리인 형제봉에 올랐다. 함께 한 산우와 커피와 과일을 나누며 가을 숲을 내려다보았다. 가을 숲은 옷도 걸치지 않고 고독하지만 기다림이란 희망이 있다. 나는 이렇게 13년 이상 이 산을 찾으며 세월의 강물이 흘러갔다. 앞으로도 13년 이상 이 산을 찾으며 낙엽에 쌓인 세월의 강물을 더듬고 싶다. 처음 산행을 배우던 광교산은 언제나 찾고 싶은 산이다.

 

2. 추억의 상처
형제봉에서 토끼재를 거쳐 시루봉으로 가는 산길에도 낙엽은 쌓여있었다. 노루목과 억새밭을 거쳐 하산하는 산길엔 낙엽이 가장 많이 쌓인 곳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길이다. 발길에 스치는 낙엽소리를 즐기며 하산을 하였다. 나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곳에서 앉아 약간의 휴식을 취하며 세월의 강물을 뒤돌아보았다.

지난 13년 동안 산행을 하며 나는 세 번의 큰 상처를 입었다. 첫 번째 상처는 일출산행을 하며 발목을 크게 다쳤다. 해가 뜨지 않은 어둠의 산길을 오르다 그만 발목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도 바로 내 뒤를 따르던 산우가 한의원에서 침을 배운 사람이었다. 발목을 삔 바로 그 자리에서 침으로 처치를 하였다. 검붉은 피가 한 그릇은 나왔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상황에서 침으로 처치 후 산 중턱에서 3시간을 더 걸어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다. 나는 산을 오를 때 그 산우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두 번째 상처는 해안의 해벽 길을 걸으며 사고를 당했다. 해안의 바위가 많던 곳이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바위에 넘어져 이마에 상처를 입었다. 가까운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가 다섯 바늘을 꿰맸다. 흉터가 남을까 많은 걱정을 했으나 현재 흉터 자국은 전혀 없다. 사고로 찢어진 부분은 성형외과에서 꿰매야 흉터자국이 남지않는다고 한다. 성형외과가 없는 시골에서 정형외과에서 꿰맸는데 다행히도 흉터 자국 없이 깨끗이 치료되었다.

세 번째 상처는 삼척의 이끼폭포를 산행하며 일어났다. 하천의 수많은 돌무더기를 걸으며 뒤로 넘어졌다. 배낭을 메고 있어 큰 상처를 피할 수 있었다. 어깨부분에 인대가 늘어난 시고였지만 뜨거운 팩으로 물리치료를 열심히 하였다. 나는 지난 13년 동안 세 번의 큰 사고가 났지만 깨끗이 치유되었다. 깨지고 터지는 사고로 입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는 특징이 있다. 문제는 우리 몸속에 서서히 자라는 만성 성인병은 쉽게 치유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3. 저무는 가을날의 찻집
하산 후 광교호수까지 4Km를 더 걸어야 한다. 개천을 따라가다 보면 보리밥 집이 많이 생겨났다. 십여 년 전 두 서 개에 불과하던 보리밥 집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새로운 건축물이 많이 눈에 띄었다.

광교 호수를 따라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나는 늘 호수 안쪽 길을 걷곤 하였다. 이번엔 도로변 길을 선택하였다. 도로 안쪽에 나무 데크 길이 잘 설치되어 있었다. 호수 쪽에는 하얗게 핀 갈대와 호수의 수면이 잘 어울렸고 도로 변 안쪽은 산기슭의 마지막 단풍 숲이 산객을 맞이하여 주었다.

오늘 산행은 이른 아침 시작하여 산행 종점에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하였다. 함께 한 산우들과 조용한 찻집에 들르기로 하였다. 조용한 찻집이어서 흘러간 세월의 강물을 더듬어 볼 수 있어 좋았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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