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동절기 동안 중단하였던 아침 산책을 다시 시작하였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시간에 집을 나선다. 숲길을 걸으며 여명(黎明)을 맞는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는 빛인 여명이 아름답다. 나는 황혼(黃昏)보다 여명을 좋아한다. 숲속의 여명은 싱그럽게 빛나고, 온갖 생명체가 깨어나기 때문이다.

여명을 맞으며 숲길을 걷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아직도 새벽길은 을씨년스럽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차갑긴 하지만 조금만 걷게 되면 몸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이젠 숲속의 나무들도 땅 속 뿌리로부터 물이 올라오는 것처럼 보인다. 회색 빛 나무껍질에도 오늘 새벽 비가 지나간 후라 더욱 더 사랑스럽고 싱그러워 보였다.

나는 숲속의 새벽길을 걸으면 피안의 세계로 가신 어머니가 보인다. 시골에서 언제나 밭일과 온갖 농사일로 새벽에 일을 하고 오셨다. 내가 숲속의 새벽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옛날 어머니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가 여명의 숲길을 좋아하는 것은 싱그러운 숲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안에 계신 사랑스런 어머니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 미세한 계절의 변화까지도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 낮은 곳에서부터 겨우내 언 땅을 밀어내고 올라오는 새싹들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이다. 숲속의 친구들도 많이 있다. 재잘거리는 콩새부터 비둘기, 까치 그리고 청솔모가 여명의 숲을 활보하고 있다. 나는 숲속의 일원으로 들어가 그들이 노래하는 것을 아침 산책을 통하여 전달하게 될 것이다.

잔뜩 흐린 광교산의 두 얼굴
오늘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하여 원거리 산행이 취소되고 광교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이른 새벽 한 차례 비가 지나간 후라 산길은 촉촉하였다. 여우골과 형제봉을 거쳐 시루봉(582m) 정상에 올라섰다. 구름이 잔뜩 끼어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거대한 이불을 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산기슭의 숲도 두툼한 구름이 덮고 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도시도 두 얼굴로 보이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광교산도 두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봄비를 흠뻑 맞았다
시루봉에서 억새밭을 거쳐 13번 종점으로 하산하였다. 종점농원에서 막걸리와 잔치국수로 요기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광교 호수를 돌아서는데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여름 소낙비처럼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호수에 떨어지는 무수한 빗방울이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나는 호수 주위를 걸으며 비를 맞기 시작하였다. 워낙 거센 비라서 잠시만 맞아도 옷이 흠뻑 젖었다. 아직도 한 시간 반 정도를 더 걸어야 하는데 봄비를 흠뻑 맞기로 마음먹었다. 봄비를 맞으며 숲길을 걷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다.

도시에선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쓴다. 하지만 숲속에선 내리는 비를 그냥 맞으면 된다. 비를 맞으며 숲속 길을 걸으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숲과 비가 만들어낸 세상을 걸으며 구경하면 되는 것이다. 봄비가 만들어낸 숲속의 싱그러움이 다가오고 숲은 봄날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파릇파릇 봄날의 향연을 기다리며 봄비를 흠뻑 맞았다.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아침 산책을 시작하였다. 봄비를 흠뻑 맞으며 8시간의 산행을 하였다. 아침 산책과 봄비가 전해주는 것으로부터 봄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싱그럽게 빛나고 온갖 생명체가 깨어나는 봄날의 숲을 식품저널 가족들에게 보내드리고 싶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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