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추출법
커피는 여러 추출법이 있다. 깔때기 모양의 필터 위에 분쇄한 원두를 넣고 주둥이가 얇은 주전자로 뜨거운 물을 살살 부어내리는 종이필터링 방식도 있고, 갈은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저어주고 5분쯤 둔 다음 아래 필터가 달린 플런저로 눌러 가루가 걸러진 커피를 얻는 프렌치프레스 커피도 있다.

그리고 최근 커피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더치 방식도 있다. 차가운 물로 오랜 시간 천천히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이다. 더치커피는 저온에서 오래 추출하여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데 향은 좀 부족할 수 있다. 향기 성분은 기본적으로 물을 싫어하는 소수성이기 때문에 찬물로는 원두의 향기 성분을 온전히 끌어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시간동안 추출하므로 수용성 성분은 더 많이 빠져나올 것이다. 아무튼 이런 효과들이 합쳐져 드립커피는 에스프레소와는 전혀 다른 풍미의 커피가 얻어진다.

그래도 지금의 커피 열풍을 만든 것은 역시 에스프레소일 것이다. 곱게 분쇄한 원두를 고압의 뜨거운 물로 순간적으로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원두 안의 지방과 단백질이 빠져나오면서 물과 뒤섞여 유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는 약간 걸쭉하고 아주 짙은 갈색의 액체로 보인다. 액체를 확대해보면 작은 기름방울이 무수히 떠 있는 상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일 아침 진한 풍미의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하루의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 라떼 등을 즐긴다. 2차 세계 대전 때 유럽에 온 미군들이 에스프레소에 적응하지 못하고 물을 타 마시는 걸 보고 프랑스 사람들이 ‘카페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고 한다.

커피의 추출법이 다양한 이유는 아마 맛 성분, 향기 성분, 쓴맛 성분이 용해도가 달라 방법에 따라 그 풍미가 달라지는 것이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커피의 향은 가급적 많이 뽑아내면 좋은데 맛 성분도 무작정 많이 뽑아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쓴맛 때문이다. 커피의 쓴맛은 낮은 농도에서는 커피의 산미와 조화를 이루고 풍미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으면 견디기 힘들다. 따라서 쓴맛의 정체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쓴맛의 이해
쓴맛은 정말로 다양하다. 단맛, 짠맛, 신맛, 감칠맛은 대부분 1가지 수용체만으로 맛을 감지하는데 쓴맛은 무려 25종의 수용체로 감지한다. 정말 다양한 물질을 쓴맛으로 감지하니, 자연의 물질에서 대부분은 무미이거나 쓴맛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치도 다른 감각에 비해 낮은 편이어서 민감하고 까다롭다.
 
그러데 떫은 것은 약간 다르다. 타닌처럼 단백질과 결합하는 물질이 주는 통증이다. 그래서 쓴맛과 착각하기 쉽다. 효소의 작용으로 이취뿐 아니라 쓴맛도 생성된다. 단백질이 분해된 펩티드가 쓴맛을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열처리에도 불활성화되지 않는 효소가 있으면 이취와 쓴맛이 발생하는 것이다. 쓴맛 펩타이드는 콩단백, 옥수수단백, 우유단백, 치즈 등에서 발견된다. 이들 쓴맛 물질은 펩티드 끝 분자가 류신인 경우가 많다는 정도뿐 구조적 유사성이 별로 없다.

펩타이드에 의한 쓴맛의 발생은 숙성된 치즈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치즈의 단백분해는 Rennin, 스타터 미생물, 오염균에 의해 일어난다. Rennin은 처음에는 단백질을 큰 펩티드로 분해하는데 이것을 작은 펩티드로 분해하면서 쓴맛이 발생한다. 그리고 더 작은 분자로 분해되면 다시 쓴맛이 없어진다. 치즈 내 미생물 생육이 원하는대로 되어야 쓴맛이 없는 치즈 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커피의 쓴맛
아래 표는 지금까지 흔히 알려진 쓴맛 물질이다.

커피의 쓴맛 물질

물질

농도 ppm

역치 (㎎/㎖)

비고

퀸산

3200~8700

10

1290

2-Methyl Furan

0.05

 

 

Furfuryl Alcohol

300

19~40

10

트리고넬린

3000~10000

 

 

클로로젠산

20~100

20~27

 

커피산

 

10~90

 

구연산

1800~8700

96~590

15

사과산

1900~3900

107~350

13

젖산

0~3200

144~400

6

피루브산

400~1700

 

 

초산

900~4000

22~70

53

피라진류

17~40

1

30

Phenyl pyridine

 

 

 

카페인

10000~20000

78~155

155

자료 : ICO Sensory
 
ㆍ커피의 주성분 중 하나인 카페인은 쓴맛이다. 하지만 역치가 낮아서 커피 전체 쓴맛의 10% 정도만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불쾌한 쓴맛도 아니다.
ㆍ트리고넬린과 클로로젠산과 같은 다른 산 물질도 약한 쓴맛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양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쓴맛에 일정부분 기여한다.
ㆍ쓴맛이 증가하면 신맛은 감소한다.
ㆍ퀸산은 카페인보다 쓴맛 역치가 10배 이상 낮다(강하다).
ㆍFurfuryl alcohol이 탄맛과 쓴맛에 기여한다.
ㆍ쓴맛은 추출의 정도, 로스팅, 물의 경도, 온도, 시간, 입도, 추출방법의 영향을 받는다.
ㆍ증류수보다는 약간의 경도가 있는 물이 쓴맛이 덜하다.
ㆍ쓴맛은 추출된 고형분 함량과 관계있다. 추출을 많이 하면 쓰다.
ㆍ고온에서 추출한 커피가 쓴맛이 적은 것은 향이 강하여 쓴맛을 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ㆍ커피에 설탕, 소금, 구연산, 증점제 등을 넣으면 쓴맛을 덜 느끼게 된다.
ㆍ로부스타 커피는 카페인과 클로로젠산 함량이 높고 이들이 쓴맛에 기여한다.
ㆍ생두의 처리 과정(건식, 습식)은 향조에 많은 영향을 주나 쓴맛에는 영향이 적다.
ㆍ중배전의 커피가 가용성물질이 적고 산은 높고 향도 강하여 쓴맛이 적다.
ㆍ디카페인 처리는 쓴맛을 약간 줄여준다.
ㆍ생두를 발효 후 24시간 물에 담금 처리를 하면 쓴맛이 준다고 한다.
ㆍ드립식이 프렌치프레스보다 추출되는 고형분이 적고 쓴맛이 적다.

지금까지 연구에 의해서 25~30의 물질이 커피의 쓴맛에 관여한다고 알려졌으나 2007년까지는 어떤 물질이 주 역할을 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카페인이 주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독일 뮌헨대 식품화학과 교수 토마스 호프만의 연구에 의해 그것은 자바 커피의 15% 정도만 기여한다고 밝혀졌다. 그래서 일반 커피와 디카페인 커피의 쓴맛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다. 커피는 로스팅을 강하게 하면 할수록 쓴맛이 증가한다. 따라서 로스팅할 때 만들어진 물질 중에 주범이 있는 것이다.

호프만 박사는 정밀한 분석기기와 훈련된 패널 요원의 관능검사를 통해 커피의 결정적 쓴맛이 클로로젠산 락톤과 Phenylindanes에 의해 발생함을 밝혔다. 2가지 물질은 생두에 없는 물질로 클로로젠산으로부터 만들어진다. 클로로젠산 락톤은 약 10가지 형태의 구조를 가지는데, 약배전~중배전한 커피에서 쓴맛을 주고 이것의 분해물인 Phenylindanes은 강배전 커피에 많다. 이것이 보다 거슬리면서 오래 남는 쓴맛을 준다. 강배전 커피가 왜 더 쓴지를 설명해 주는 물질이다. 추출 조건을 개선하거나 품종 개량을 통해 이들 물질이 적게 생산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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