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
농촌진흥청 농업생물부장

김두호 농촌진흥청 농업생물부장

어린 시절을 보낸 충북 괴산의 시골마을은 5월이 깊어지면 하얀 아카시아꽃과 함께 달콤한 향내가 온 마을에 가득했다. 배앓이를 할 때나 겨우 한 숟갈 먹을 수 있었던 달디 단 아카시아 꿀이 기억에 또렷하다. 요즘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꿀을 살 수 있어 귀한 느낌이 덜하지만 그래도 꿀은 여전히 손님 선물로, 좋은 음식 재료로, 몸에 좋은 차로 대접받고 있다.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토종벌이라고 알려진 동양종 꿀벌(Apis cerana)을 작은 나무통 안에서 길러 1년에 한 번씩 벌꿀을 수확했기 때문에 벌꿀이 엄청나게 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1910년 독일계 구걸근(K gelgen) 신부가 서양종꿀벌(Apis melifera)을 농가에 보급하면서 지금과 같은 꿀벌 사육이 시작됐다.

특이한 것은 농작물 재배의 목적이 ‘열매 수확’이라면, 양봉은‘꿀 채취’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 다른 농작물이 결실을 맺을 수 있게‘화분매개’라는 공익적인 기능까지 있다는 점이다.

꿀벌은 하루 50회 이상 꽃을 찾아다니며 한 번 나가면 무려 4㎞ 반경을 날아다닌다. 1㎏의 꿀을 모으기 위해 지구 한 바퀴와 맞먹는 4만㎞를 비행한다. 이렇게 꿀벌이 부지런히 돌아다닌 덕분에 농산물은 튼실하고 맛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우리는 그 수고로움의 대가인 달콤한 꿀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꿀 중에는 이러한 수고로움 없이 얻어지는 꿀도 있다. 사양(飼養)꿀로 불리는 벌꿀 아닌 벌꿀은 꿀벌이 꽃에서 꿀을 얻어오는 것이 아니라 꿀벌에게 설탕물을 주어 생산해내는 꿀을 말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양봉농가에서는 사양꿀이 아닌 천연꿀을 채취하고 있지만 식품첨가물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거나 꽃이 부족한 경우에 사양꿀을 생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맛만 놓고 봤을 때 천연꿀과 사양꿀을 일반 소비자가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사양꿀은 향과 성분, 효능 등에서 천연꿀과 크게 차이가 있어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천연꿀에는 꽃에 담겨 있던 비타민, 무기질, 아미노산 그리고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이 포함돼 있지만 사양꿀에는 이러한 성분이 없기 때문이다. 벌꿀이 가지고 있는 숙취 해소나 원기 회복과 같은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사양꿀은 벌꿀을 판매할 때 제품 라벨에 꼭 사양꿀이라고 표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양꿀을 천연꿀로 속여 팔아 힘들게 천연꿀을 생산하는 2만 양봉농가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일이 생길 때가 있다. 소비자들로부터 이런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양봉농가는 물론 양봉 관련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야 하며, 정책적으로도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하다.

우선 인공적으로 숲을 조성할 때 꿀벌의 밀원수(꿀벌이 꿀을 수집하는 나무)를 심으면 꿀을 수집할 수 있는 원천이 풍부해져 사양꿀을 생산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장원벌처럼 꿀을 많이 수집할 수 있는 꿀벌 품종을 육종하는 것도 해결 방안의 하나이다. 소비자가 천연꿀과 사양꿀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양봉농가에서는 영농조합법인을 결성하고 양봉농협을 통해 천연꿀을 알리며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소비자들도 양봉농가와 꿀벌이 힘들여 생산한 천연꿀을 찾아준다면 양봉농가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꿀을 살 때는 사양꿀 대신 천연꿀을 선택해 건강도 챙기고, 우리 양봉농가도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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