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온 카메라는 센서의 성능과 그래픽 처리 엔진이 워낙 좋아져서 자동으로 설정하고 찍어도 어지간하면 잘 나온다. 하지만 예전에는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부가 필요했다. 햇빛이 풍부한 낮에는 사진이 잘 나오지만 형광등이나 백열등에서는 눈에 보이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억지로 사진을 찍어도 눈으로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른 색상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눈으로 보면 흰색은 항상 흰색인데 카메라는 상황에 따라 흰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대부분은 카메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정직한 화면이고, 우리 눈에 빼어난 이미지 조작 장치가 있는 것이다. 햇빛은 아침, 한낮, 저녁 모두 다르고 조명도 광원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흰색이 빛에 따라 달라져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뇌는 빛의 상황에 맞추어 언제나 흰색은 흰색으로 피부색은 피부색으로 보이게 한다.

예전의 카메라에는 조명을 감안해 이미지를 조정해주는 장치가 없어서 빛에 반응한 결과물 그대로 정직하게 찍혔고 흰색이 조명에 따라 누르스름하거나 붉게 찍혔다. 요즘 카메라는 이것을 보정해주는 오토 화이트밸런스 기능이 있다. 빛의 조명에 따라 결과물을 보정해 흰색을 흰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우리 눈의 화이트밸런스 기능은 탁월하다. 카메라는 우리 눈을 흉내 내서 화면상의 가장 밝은 부분을 찾아 흰색 부분을 설정해주고, 이를 기준으로 다른 색깔들은 상대적인 균형을 설정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뇌는 대상물에서 순식간에 흰색으로 보여야 할 물건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흰색으로 나오도록 보정하는 순간 다른 색들도 자동으로 보정된다.

우리 눈의 자동 색상(흰색) 보정(밸런스) 능력을 흉내 내어 카메라에 구현된 것이 오토 화이트밸런스 기능이지만 아직은 우리 눈에 미치지 못한다. 이정도 수준도 카메라 회사에서 정말 많은 연구를 거듭한 결과지만 말이다. 인간처럼 물체를 인식하는 기능까지 갖추어야 카메라의 화이트밸런스 능력은 완성됐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필름의 감도는 ISO 100~400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의 고급 디지털 카메라는 10만까지도 나온다. 감도가 천 배까지 높아져 예전에는 어두워서 눈에는 보여도, 사진 촬영은 별도 조명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촛불 정도의 밝기에서도 충분히 사진이 잘 찍힌다. 이제야 카메라의 감도가 인간 눈의 어둠에 대한 적응력을 흉내 낸 것이다.

인간의 눈은 어두우면 감도가 10만배까지 증가한다. 대낮에 비해 빛이 1/10만으로 감소해도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보이는 것이다. 밝을 때와 어두울 때 우리의 눈에서 사용되는 빛 수용체는 전혀 달라지지만 뇌의 그래픽 능력은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처리해 그냥 똑같이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밤에는 형체만 보이고 색상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별로 의식하지 못한다.

카메라의 고감도 기능이 엄청나게 발전해 촛불 하나로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으니 사진 촬영의 난점은 모두 해결됐을까? 아니다. 계조 문제가 있다. 흔히 역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차라리 낮에 그늘이 지면 사진이 잘 나오는데 빛이 너무 밝으면 그림자가 강하고 음영의 계조 차이가 심해 사진이 원하는 대로 찍히지 않는다.

 
빛이 강하지 않아도 사람 얼굴이 역광이면 배경은 보기 좋은데 얼굴은 검게 나와 사진을 망친다. 얼굴을 기준으로 노출을 밝게 하면 주변 배경은 너무 환해 디테일이 사라진다. 이처럼 아주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하나의 사진에 공존할 때에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의 눈은 역광에서도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보이게 하고, 계조가 심해도 어두운 곳은 밝게 하고 밝은 곳은 억제해 적당히 균형 있게 보이게 한다. 이 평범한 현상도 뉴로그래픽을 통해 보정한 덕분이지 실제 그대로면 불편한 결과물일 것이다.

요즘 카메라에서 계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HDR이라는 기능이 구현된 것들이 있다. 카메라로 밝은 노출과 어두운 노출을 같이 찍어서 밝기가 고르게 되도록 합성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카메라에 강력한 CPU와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가능해진 기능이다. HDR 현상만 잘 생각해 보아도 우리의 시각은 분명히 눈으로 보는 그대로가 아니고 엄청난 소프트웨어 처리를 한 보정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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