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저널 인터넷식품신문 food news는 [최낙언의 감각ㆍ착각ㆍ환각]을 연재합니다. 필자는 “우리가 보는 세상은 시신경으로 들어온 신호를 그대로 인지한 것이 아니라, 들어온 신호를 바탕으로 뇌에서 다시 만들어낸 ‘뉴로그래픽’으로, 우리는 절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볼 수 없으며, 뇌가 그리는 대로 볼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맛도 마찬가지라는 것. 입과 코로 느끼는 것은 맛의 시작일 뿐 최종적으로 맛에 미치는 영향은 3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경험, 기대감, 선입견, 가격, 분위기 등 내외적인 모든 요소를 종합하여 뇌가 부여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즉, 먹을 때 느끼는 맛의 즐거움은 대부분 뇌가 만든 것으로,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어떤 식당은 대박이 나고 이웃에 있는 식당은 철저히 외면 당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자 한다면 어떻게 뇌가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합니다. “뇌를 아는 것이 맛을 아는 것이며 우리를 아는 것이고, 아는 만큼 자유로워지고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최낙언 시아스 이사가 식품을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뇌 과학에 다루는 글을 매주 2회(월ㆍ목)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내가 뇌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라는 책이었다. 저자인 조나 레러는 콜롬비아대학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노벨상 수상자인 유명한 뇌 과학자 에릭 캔들의 실험실에서 연구하면서, 요리를 좋아해 뉴욕의 일류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프루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가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를 먹으면서 과거의 기억을 오롯이 되살리는 대목을 보고, 그것이 최근에야 신경과학이 밝혀내기 시작한 메커니즘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과거의 예술가들이 뇌에 관한 진실을 과학이 밝히기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책에 예민한 관찰력으로 과학 이전에 지금에야 밝혀지고 있는 뇌 과학 현상을 통찰했다고 생각한 예술가 8명의 삶을 다룬다. 그 중에 한명이 위대한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다. 조나 레러는 그를 통해 미각과 후각 시스템을 조망한다.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며 젊은 뇌 과학자가 식품회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나보다 식품 현상의 본질을 잘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이야기 중에 ‘어떻게 복잡한 성분이 든 요리에서 전체적인 맛도 알고 부분적인 맛도 구분할 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며, 앞으로도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 문구가 묘하게 나를 자극했다. 그래서 뇌 과학에 관한 자료를 볼 때면 항상 그것의 힌트가 있는지 살펴보곤 했다. 하지만 뇌 과학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 부분에 관한 자료는 많지만 막상 뇌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은 별로 없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뇌 과학에 진화론처럼 단순하지만 많은 것을 설명하는 아름다운 이론이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다 라마찬드란 박사의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를 읽었다. 부분보다는 그것을 단초로 전체적 의미를 찾으려 하는 그의 접근 방식이 아주 좋았다.

컴퓨터는 오직 0과 1로 되어 있다. 그 단순한 기본구조는 그대로인데 30년 전 장난감 같던 PC가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진화하였고, 인터넷처럼 거대한 유기체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이 정교하게 연결된 것을 정말 좋아한다. 수학과 물리학에서는 단순한 수식으로 많은 현상이 설명될 때 아름답다고 한다. 식품 분야에도 이런 아름다움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뇌 과학의 원리로 예술의 원리마저 설명하려 한다. ‘세상에! 인간 정신의 창조적 발산 행위인 예술마저 원리로 설명하려 하다니!’ 나는 그의 시도 자체만으로도 대단해 보였다. 식품에서는 맛의 원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맛의 원리는 왜 찾으려 하지 않지? 왜 그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다고 그냥 넘어가려 하지?’ 물론 맛의 모든 것을 원리로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노력은 해봤는지 의문이다.

그러다 얼마 전 올리버 색스의 <환각>을 읽었다. 본인이 경험한 여러 가지 환각과 그가 만난 여러 환자의 환각을 다루었는데, 그중에 냄새의 환각(환후) 사례도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아! 환후로 우리가 어떻게 냄새를 구분할 수 있는지 설명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뇌에서 후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다. 뇌 피질에서 후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0.1%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요성이 무시되고, 관심을 가져도 워낙 좁은 영역이라 마땅히 관찰한 방법도 없다.

그런데 시각에 대한 자료는 아주 풍부하다. 피질의 25%를 차지하여 후각보다 250배 넓은 면적이고, 관측도 용이하다. 그리고 후각과 시각의 기능이 다르지만 모든 감각의 모태는 후각이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기도 하다. 후각이 가장 먼저 만들어지고 다른 감각은 이때 개발된 시스템을 응용하여 발전한 것이라고 하니, 나는 거꾸로 시각을 통해 후각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감각기관의 정보를 이용해 뇌는 어떻게 외부 세계를 지각하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수단으로 ‘미러뉴런’ 시스템을 이용하고자 한다. ‘미러뉴런’은 거울처럼 따라 하기 기능을 하는 세포로, 인간의 탁월한 흉내 내기 능력과 공감하는 능력 등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인지 설명하는데 쓰인다. 하지만 아무도 시각이나 후각 같은 감각을 어떻게 지각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설명하는데 쓰지 않았다.

그런데 필자는 올리버 색스의 <환각>을 읽던 중 갑자기 시각이나 후각 등 감각을 지각하는 과정에서도 이 ‘미러뉴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감각한 정보를 ‘미러뉴런’ 시스템이 만든 ‘뉴로그래픽’과 비교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추론하고 보니 많은 것이 연결되어 설명이 가능해졌다. 감각, 착각, 환각, 지각이 모두 ‘미러뉴런’ 매칭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설명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추론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같이 뇌에 관한 세부자료는 많지만 뇌의 전체적인 작동방식을 설명하는 이론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의 이런 추론이 아주 의미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누구나 먹어야 산다. 그리고 먹을 때 느끼는 맛의 즐거움은 평생 유지되는 쾌락이며, 그 쾌락은 뇌가 만든 것이다. 뇌를 아는 것이 맛을 아는 것이며 우리를 아는 것이고, 아는 만큼 자유로워지고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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