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생존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한다.

▲ 많은 사귐도 모두 밥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혼자 먹는 밥이란 쓸쓸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음식은 생존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관계에도 ‘밥’이 빠질 수 없고 조상이나 신과의 만남, 고향이나 모국의 추억, 그리움도 ‘밥’이 매개한다.

어릴 적 입맛이란 다름 아닌 어머니의 손맛이다. 그 어머니의 손맛은 다시 할머니로부터 이어온 입맛이다. 물론 자라나 외지에 나가 살기도 하면서 입맛이 변하기는 하지만 그 어릴 적의 입맛은 늙어 노인이 될 때까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맛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은 그치지 않는다. 가족이란 핏줄과 함께 입맛을 나눈 사이이고, 그래서 명절이면 함께 모여 음식을 마련하고 정뿐만이 아닌 입맛을 나눈다.

입맛을 나눈다는 것은 가족만의 일은 아니다. 고향의 친구들과 동향 사람들은 대개 같은 입맛을 가지고 있다. 동향 사람임을 확인하는 일은 고향의 옛일과 사람들의 친분으로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고향의 입맛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동향 사람들의 만남은 제 고장의 음식을 먹으면서 비로소 고향의 훈훈한 정감이 살아나고 동질성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평양냉면, 함흥냉면, 설렁탕과 같은 향토 음식을 파는 곳에는 노인들이 고향의 맛을 찾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온다. 고향의 사투리로 이야기하며 고향의 음식을 먹는 귀소본능이라 하겠다.

그래서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모를 때가 있다. 일을 하다가도 때가 되면 ‘먹자고 하는 일인데’하며 밥 먹자고 보챈다. 날마다 삼시 세 끼를 먹어야 하는 밥이지만 밥의 의미는 각별하다. ‘밥 먹었니’가 인사가 되고, 사람을 만나자는 이야기도 흔히 ‘밥이나 같이 먹자’라는 말로 대신한다.

밥상머리 마주하는 가족은 밥을 함께 먹는 ‘식구(食口)’가 되고, 이 외연은 더욱 넓어져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는 ‘한솥밥’ 먹는 사이가 된다. 한솥밥을 강화하는 의미는 회식으로 이어지며,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는 사이로 진전된다.

많은 사귐도 모두 밥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혼자 먹는 밥이란 쓸쓸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신과의 접촉에도 어느 종교, 어느 문화권에서나 음식이 함께한다. 굿판이 벌어지면 온갖 떡과 음식이 가득한 상이 차려지고 이 음식들로 신을 맞는다. 아무리 없는 살림에 보잘 것 없는 신과의 만남에도 밥 한 그릇이 없을 수 없으며, 하다못해 부녀자가 치성을 드리는 데에도 맑은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빈다.

동물을 키우는 유목민은 주로 동물을 신과의 교통에 쓰이는 제물로 쓴다. 농사를 짓는 정착민도 동물을 희생으로 쓰기는 하지만 역시 자신들의 농산물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인간은 때로는 악취가 나는 음식과 역겨운 음식도 기꺼이 먹는다. 일부 음식 냄새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심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 특산 스트뢰밍이 있고, 스칸디나비아에는 루터피스크가 있다. 최악의 맛과 냄새에도 자신이 진정한 크누트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1년에 최소 한 번은 이 루터피스크를 먹는다. 그걸 소속의 상징으로 만든 것이다. 두부를 발효시킨 취두부를 먹지 않으면 진정한 타이완 사람이 아니다. 삭힌 상어 고기인 하르칼을 먹지 않으면 진정한 아이슬란드 사람이 아니다. 일본인은 납두(청국장), 우리에게는 홍어가 있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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