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교수의 농식품비즈니스 이야기]

‘GAP 인증(농산물우수관리)’ 마케팅 차별화 도구활용 가능성은?
‘내 제품은 좋은 것’ 보다는 ‘내 제품은 다른 것’의 접근이 낫다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이라는 용어는 마케팅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용어 중의 하나이다. 식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적절한 가치 제안을 통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하게 만들 수도 있고,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도 만들 수 있다. 즉, 제품의 이미지를 소비자들의 마음 속 깊이 제대로 새기기 위해 우리는 가치제안을 한다. 그렇다면 어떤 가치제안이 좋은 가치제안일까?

‘좋은 것’ 보다는 ‘다른 것’의 접근이 낫다
브랜드 마케팅의 대가이자 ‘포지셔닝’이라는 개념을 처음 고안한 알 리스 (Al Ries)는 그의 저서 ‘경영자 vs. 마케터 (원서명 : War in the boardroom)’에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가치 제안은 그 제품 브랜드의 포지셔닝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단언한다. ‘가장 맛있는 우유’, ‘ 감칠맛이 끝내주는 국물’, ‘정말 달콤한 사탕’, ‘ 합리적인 가격의 초콜릿’ 식품을 프로모션할 때 이런 식의 가치 제안은 브랜드의 포지셔닝에 별 기여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정말 원하지만, 누군가는 원하지 않는 가치 제안이야 말로 브랜드 구축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시큼한 젤리’, ‘미치도록 매운 라면’, ‘하나도 달지 않은 막걸리’, ‘정말 고가의 초콜릿’과 같은 가치 제안은 소비자들에게 더 강하게 어필한다. ‘내 제품은 좋은 것’ 보다는 ‘내 제품은 다른 것’의 접근이 낫다.

농식품 이력제는 21세기에 들면서 우리 농식품 분야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었다. 당시 많은 논의가 있었던 점은 축산 분야에 이력제를 적용하려면 도축 시에 서로 다른 개체 간 지육이 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컨베이어 벨트 방식을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개체 별 도축이 원칙이고, 소는 때로는 2분, 또는 4분을 도축하여 개체식별번호를 붙인 후 해체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돈육의 경우 컨베이어 벨트 방식을 포기하고 개별 도축 방법으로 도축해 보았더니, 시간과 인건비 측면에서 가격이 최대 80% 정도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이력제를 가치제안의 도구로 쓰게 되면 필수적으로 가격이 상당히 올라가는데, 과연 소비자들은 그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을 것인가?

이력제는 가치 제안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당시 내가 수행했던 연구는 이 이력제와 관련된 소비자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간단한 몇 가지 설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제품에 대한 이력제 적용을 통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고, 이 신뢰를 통해 판매자가 소비자 자신을 기만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력제가 적용된 제품의 구매 의사는 매우 높았으나, 추가적인 가격 지불 의사는 그리 썩 높지 않게 나타났다. 또 하나 매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력제가 적용된 제품에 높은 구매 의사를 보인 소비자들도 제품의 실제 이력 정보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즉, 신뢰할만한 기관, 예컨대 농림수산식품부가 인증하는 ‘이력제’ 이니 믿고 사겠다라는 의도를 가지게 되지만, 실제 그 쇠고기의 생육ㆍ도축ㆍ유통 정보 등을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는 현저히 낮았다.

자, 이 이력제를 가치제안의 도구로 써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가격 상승을 감수하고라도 이력제를 도입하고, 이를 마케팅을 도구로 써야 할 것인가? 이 심각했던 고민은 싱겁게 결론이 나고 말았다. 당시 농식품부는 소비자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쇠고기에 한해 시범 사업을 거쳐, ‘소 및 쇠고기 이력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이력제를 2013년 12월부로 시행하였다. 즉, 대한민국에서 사육되고 유통되는 모든 소와 소고기는 무조건 ‘이력제’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 농산물의 경우는 농식품부가 GAP(농산물우수관리)인증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이력제를 GAP인증을 받기 위한 선행요건으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이력제는 농식품 마케팅에 있어서 가치제안의 도구로는 주목 받기 어려운 개념이 되어 버렸다.

▲ GAP인증농산물
이력제는 식품안전의 도구로서 중요
마케팅 측면에서 차별화의 도구로서 ‘이력제’는 그 빛이 바랬지만, 국민의 건강과 식품 안전의 도구로서 이력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농식품에서의 이력제는 이제 GAP인증의 일부로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기존의 품질 인증 제도가 제품에 대한 품질 인증이었다면, GAP인증은 제품 관리에 대한 품질 인증이다. 제대로 관리한 농산물의 소비를 진흥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이기도 하다. 예컨대 농약을 쓰더라도 제대로 쓰고 관리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GAP인증에 있어 역시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이력제이다. 그런데 요즘 GAP인증의 하위 규정으로 알려진 이력제가 또 다른 관심을 받고 있다. GAP인증을 가치제안의 도구로 쓰려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예컨대 고추의 GAP인증을 위한 이력추적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고춧가루 제품에서 ‘GAP 인증을 받은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라는 가치제안을 하려면 가루를 내는 과정에서 GAP인증 고추와 비인증 고추가 혼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관리의 측면에서 만만치 않다. 수십 수백 농가의 고추를 한 번에 받아와서 빻는 과정에서 혼입을 막으려면 역시 비용이 발생한다. 인삼 생산에서의 이력추적은 썩 어렵지 않지만 홍삼으로 가공을 하기 위해선 세척ㆍ증삼ㆍ건조 과정이 필수인데, 이 과정에 있어 혼입이 발생을 하게 되면 ‘GAP 인증을 받은 인삼으로 가공한 홍삼’이라는 가치제안을 할 수가 없게 된다.

GAP 인증을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대학, 지자체에서 이러한 혼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매뉴얼 개발 연구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또한 농업의 6차 산업화가 추진되면서, 농가단위에서 쓸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저가의 가공 기계들이 새롭게 시장에 등장하여 혼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GAP 인증이 적절한 마케팅의 차별화 도구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겠지만, 이런 GAP 인증을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와 제품 개발이야 말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고민해 봐야 한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Food Business Lab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마케팅ㆍ식품 및 바이오산업 전략 등을 가르치며, 농식품 분야 혁신 경영 연구를 위한 Food Business Lab.을 운영하고 있다. Food Business Lab.은 농업, 식품가공, 외식 및 급식, 유통을 포함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즈니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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