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경험디자이너 진익준의 레스토랑 인테리어 특강 128.

떡볶이 열풍의 이면,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K-푸드의 위상을 확인하는 일은 꽤나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뉴욕의 미쉐린 가이드에 한식당이 이름을 올리고, 런던의 노점에서 떡볶이를 사 먹기 위해 긴 줄을 서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사실, 우리끼리 솔직해지자면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우리가 집에서 흔히 먹던 냉동 김밥이 미국 마트에서 동나고, SNS를 통해 ‘불닭’ 챌린지가 번져나가는 현상을 보며 우리는 ‘문화의 힘’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차갑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의 이 열풍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인가, 아니면 스쳐 지나가는 문화적 유행(Fad)인가? 우리는 정말로 음식을 팔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한국이라는 브랜드 가 주는 일시적인 ‘힙함’을 팔고 있는가? 비극은 대개 가장 화려한 축제 뒤에 찾아온다. 

만약 우리가 지금의 성공에 취해 ‘맛’과 ‘정성’이라는 낡은 레토릭에만 머물러 있다면, K-푸드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맛의 수출’이라는 1.0 시대를 지나, ‘시스템의 복제’라는 2.0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엄마의 손맛’이라는 이름의 위험한 환상
우리나라 외식업계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 ‘손맛’일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볼 때, ‘손맛’만큼 위험하고 무책임한 단어도 없다. 손맛은 주관적이며, 전수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확장이 불가능하다. 한국에 서 줄 서서 먹는 맛집이 해외에 진출해 고전하는 이유 중 상당수는 그 ‘맛’을 만 들어내던 주방장의 감각이나 특정 식재료의 질을 시스템으로 치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식 비즈니스는 예술이 아니라 공학이어야 한다. 흔히들 메뉴 개발이 외식업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진정한 성공은 메뉴 뒤에 숨겨진 ‘비즈니스 아키텍처(Business Architecture)’에서 결정된다. 건물을 짓기 전에 설계도를 그리듯, 외식 사업 역시 주방의 동선, 식재료의 공급망(SCM), 고객의 경험 경로, 그리고 인력 운영의 로직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비즈니스 아키텍트가 된다는 것은, 내가 주방에 없어도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가치가 창출되도록 시스템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시장의 승자는 ‘맛’이 아닌 ‘표준’을 설계한 자들이다
우리가 흔히 ‘맛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전 세계 어디서든 맥도날드나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세계 최고의 맛을 가졌기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가졌기 때문이다. 1950년대 레이 크록이 맥 도날드를 프랜차이즈화했을 때, 그가 판 것은 햄버거가 아니라 ‘속도와 정확성을 보장하는 주방 시스템’이었다. 

최근의 사례를 보자. 미국의 치폴레(Chipotle)는 ‘건강한 패스트푸드’라는 가치를 내세워 성공했지만, 그 기저에는 극도로 효율화된 오퍼레이션 시스템이 있다. 그들은 복잡한 메뉴를 과감히 쳐내고 고객이 선택하는 조합에 따라 수천 가지 맛을 내면서도, 주방에서는 단 몇 초 만에 음식이 완성되는 ‘시스템의 미학’을 보여준다. 

반면, K-푸드의 글로벌 진출 사례 중 교촌치킨이나 비비고의 성공을 뜯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그들은 단순히 양념 맛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원팩(One-pack) 시스템을 통해 주방 숙련도를 낮추고, 한국식 튀김 공정을 매뉴얼화하여 현지인 직원들도 똑같은 바삭함을 구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K-푸드 2.0’의 본질이다. 맛의 핵심은 본사에서 통제하고, 운영은 현지 시스템에 최적화하는 것이다.

70/30 법칙: 표준화와 현지화의 절묘한 균형
그렇다면 어떻게 시스템을 복제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70/30 법칙’에 주목해야 한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핵심 가치(Core Logic)는 70%를 유지하며 철저히 표준화하되, 나머지 30%는 현지 시장의 특성에 맞게 유연하게 설계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 시장을 공략할 때 한국의 배달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하려 한다면 필패할 것이다. 베트남은 ‘모바일 퍼스트’를 넘어 ‘모바일 온리’의 시장이다. 현지 슈퍼앱인 ‘그랩(Grab)’과의 데이터 연동은 필수이며, 현금 없는 (Cashless) 결제 시스템이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 현지 원재료 비중을 높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Mass’ 메뉴와 한국 직수입 재료를 사용하는 ‘Premium’ 메뉴를 이원화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영국 시장이라면 어떨까? 거기는 이미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비즈니스의 문턱이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로컬 식재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플라스틱 프리 패키징을 시스템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가 맛보다 우선적인 고려 사항이 된다. 시스템의 복제는 복사기로 종이를 찍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현지라는 토양에 맞게 유전자(DNA)를 이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AI와 로봇, 이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아키텍처
비즈니스 아키텍처를 설계할 때 이제는 인간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적인 구인난과 인건비 상승은 외식업의 수익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여기서 ‘푸드테크’는 단순한 전시용 로봇이 아니라 시스템의 핵심 부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일본의 사례를 보자.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외식업계는 이미 로봇과의 협업(Cobot)을 전제로 주방을 설계한다. 좁은 공간에서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듈형 테크스택을 구축하는 것이 진입장벽이 된다. 단순 반복 업무는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은 고객과의 정서적 교감, 즉 ‘오모테나시(지극한 환대)’에 집중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우리의 K-푸드 매장도 마찬가지다. 주방 아키텍처를 설계할 때 처음부터 협동 로봇의 동선을 고려해야 한다. 로봇이 튀김을 튀기고 인간이 마지막 시즈닝을 입히는 방식의 정밀한 설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고물가와 인력난이라는 파고를 넘을 수 있다. 이것은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인간다운 노동을 지키기 위한 공학적 결단이다.

‘Trend Lifecycle Index(TLI)’로 시장의 파도를 읽어라
마지막으로, 시스템은 ‘시간’의 흐름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많은 외식 경영자들이 유행(Fad)을 트렌드(Trend)로 착각해 무리한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본다. 탕후루 사례가 보여주듯, 사회적 결핍과 기술적 동인이 뒷받침되지 않은 유행은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비즈니스 아키텍트는 TLI(Trend Lifecycle Index) 모델을 통해 시장의 수명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이 메뉴가 도입기인지, 성숙기인지, 아니면 쇠퇴기인지 데이터로 판단해야 한다. K-푸드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K-컬처’ 프리미엄이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데이터 중심의 의사결정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시장이 변할 때 시스템을 어떻게 피벗(Pivot)할 것인지 미리 설계되어 있지 않다면, 그 비즈니스는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다.

메뉴판을 덮고 설계도를 펼치자
우리는 흔히 ‘음식 장사는 정직하다’고 말한다.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들면 손님이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이 말은 절반만 맞다. 정직한 맛을 지속 가능하게 공급할 수 있는 ‘정직한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만 그 진심은 고객에게 가닿는다.

K-푸드 2.0 시대의 주인공은 훌륭한 요리사가 아니라, 훌륭한 ‘비즈니스 아키텍트’가 될 것이다. 이제 메뉴 개발에 쏟는 열정의 절반을 시스템 설계에 쏟아야 한다. 나 없이도 돌아가는 세계,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동일한 품질을 보장하는 시스템, 그리고 기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아키텍처를 구축하자.

런던의 한식당에서 로봇이 튀겨낸 치킨을 먹으며 현지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향유하는 풍경, 그것은 단순히 맛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시스템의 승리여야 한다. 

메뉴판을 덮고 설계도를 펼치자. K-푸드의 진짜 전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진익준 브랜드경험디자인연구소 대표
진익준 브랜드경험디자인연구소 대표

 

진익준 브랜드경험디자인연구소 대표는 외식공간 기획자, 음식점 튜닝 컨설턴트, 공간마케팅 교수·작가이자, 경기대학교 외래교수, 청운대학교 외래교수, 세종사이버대학교 외래교수, 한양사이버대 외식프랜차이즈 MBA 외래교수, (사)한국외식경영학회 부회장,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식품저널 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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