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오늘 더 의미 있게 살면서
나만의 기억의 창고에 그리움 꺼리 많이 만드는 시간 보내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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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마음속으로 다시 되뇌어본다. 잔잔한 호수에 비치는 햇살 같은 편안한 마음이 된다. 그리고 따뜻하다. 그리움을 불러일으킨 대상이 스르르 머릿속에 떠오른다. 오랫동안 마음 저 밑바닥에 고즈넉이 침착해있던 기억이 불려 나와 마음속 살아있는 영상으로 나타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리움은 지금 이 자리에서 현실로는 마주할 수 없는 피안의 영역에 있는 것을 불러 내와 내 감정에 이입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완전히 개인적인, 나만의 것이다. 

며칠 전,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가 오래되어 깊게 의지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상처 후 처음이다. 평소 부부 사이가 무척 좋았고 성공한 삶을 살았는데, 그만 큰 불행을 당하였다. 부인이 별세하기 전 꽤 오랜 기간 병구완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긴 시간 봐왔다. 사는 아파트의 도시 공기가 나쁠 것 같아 도시 생활을 접고, 강원도 한적한 곳을 골라 집을 짓고 그곳에서 봄, 여름, 가을을 지내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려 서울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기도 하였다. 그 기간이 꽤 길었다. 

그 알뜰한 배려를 옆에서 보기에도 애틋한 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이신동체(二身同體), 정이 쌓여 한 몸같이 둘을 지켜 주었는데, 한쪽이 자기 옆자리에서 사라졌으니 허망하고 외롭고 쓸쓸하지 않겠는가. 남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그리움만이라고 말한다. 마음 상처의 아픔은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아니 되는 나만의 영역이다. 나이 먹고 금실이 좋은 부부에게서 오는 일반적인 감정이지만, 내가 직접 당해 보지 않고 떠난 반쪽을 그리는 친구로부터 전해오는 느낌만으로도 가슴 가득 아픔으로 아려오는 기분이다. 
 
그리움, 못내 아쉬움의 표현이고 가슴속에 찬바람이 이는 저린 감정의 표출이다. 그 그리움은 결코 현실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단철된 피안의 세계에 대상이 있을 때 더욱 절절히 느끼게 된다. 보통 우리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부모님을 생각할 때 그리움의 감정이 솟긴 하지만, 평생을 같이해온 반쪽의 사별과는 다른 감정이라고 여겨진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있게 해준 천륜의 감정과 키워주시고 보살핌이 어우러진 정의 합이고, 부부간의 정은 나 스스로 정하고 함께 살아온 삶의 여정에서 같이한 모든 사연이 모여서 그리움의 바탕이 된다. 

그리움은 인간이 갖는 가장 순수한 마음의 표출이며, 결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만이 갖는 사적인 감정의 표출이다. 그리움이 마음에서 일면 그 그리움으로 더 진한 감정이 이어진다. 짝을 잃은 아픈 상처가 그리움으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리움을 남겨준 상대를 다시 생각하는 여유가 다시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그리움을 보듬어 안고, 나만이 가진 소중한 자산이라고 에둘러 생각하는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끝없는 그리움 속에 빠져 다시 마음 상하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수십 년의 추억을 하나하나 반추하면서 즐거움을 사막에서 보석 찾듯 하여 아픔을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는지.
 
이제는 내 처지로 돌아와 지금을 보고 있다. 꽤 오랜 시간 아내와 같이 지난 듯하지만, 엊그제와 같이 잠깐의 시간으로 착각이 되곤 한다. 언제 내 머리가 대머리가 되었고, 아내의 숫 많고 윤기 나던 검은 머리카락이 희게 변하였는가를 안타깝게 쳐다본다. 함께한 긴 여정에서 지금을 둘러보면, 그래도 지금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아직은 옆에 있으니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고, 같은 공간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돌아가신 숙모님의 얘기, 작은 아버님이 오랜 병고를 겪고 먼저 떠나시고 나서 하신 말씀, “벽에 기대고도 살아계실 때가 너무나 그립다.” 그렇다, 생존해 계실 때보다 떠난 후 남은 마음의 허전함은 그리움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 어느 동물이 떠난 대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과거를 불러올 수 있을까. 지나고 난 일을 그 일에서 느낀 감정이 생생히 남아 지금으로 재현되어 가슴을 적시는 감정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리운 감정이다. 

가버린 것에 대해 아쉬움과 다시 보지 못할 안타까움을 그리움이라는 표현으로 나를 달래 보지만, 그리움 다음에 오는 허전함은 어찌 채울 수가 있겠는가. 매일매일 우리 삶에서 평범한 일과로 하루를 접다가, 언젠가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어찌 지금 생각하는가. 그날 올 때까지 남은 오늘을 더 의미 있게 살면서, 나만의 기억의 창고에 그리움 꺼리를 많이 만드는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가짐으로 오늘을 보내고 있다. 지금 가진 마음 넉넉함에 가끔 찾아오는 일렁이는 마음속 잔물결을 조용히 다독거려본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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