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늦게 철들어 산다

주어진 남은 시간의 선물, 아내와 같이하며 정리해야 나를 앞세우기보다 더불어 같이가 잘 어울릴 때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86)

2022-11-09     식품저널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근 50년을 함께한 아내에게 무심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 것은 요즈음 나이 먹어 철이 든 징표가 아닐까 여겨진다. 어찌 보면 매 순간 숨 쉬고 있는 공기나 수도꼭지를 틀면 항상 이용할 수 있는 물처럼 옆에 있으니,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항상 불편이 없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치부한 때문이리라. 

어느 시인의 글, 오래 삶을 같이한 아내에게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궁금한 말, “당신의 꿈은 무엇이오?”라는 질문에 즉각 돌아온 답, “당신 꿈이 내 꿈이지요.” 아 나는 내 반려가 내 가슴 속에 차지한 중요한 자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구나 하는 회한이 인다. 

가장 어렵고 소중한 관계, 부부 사이인데,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속마음을 알지 못하는 때가 많다. 가장 가까우니 당연하다고 쉽게 지나쳐 마음속에 품은 뜻을 알아채지 못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의 꿈이 꼭 같을 수는 없겠지만, 아내가 당신의 꿈과 같다고 얘기한다는 것은 당신의 모든 것을 지원한다는 긍정적인 뜻을 에둘러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출근하는 남편에게 “오늘도 수고하세요” 하고 말하는 뜻은 무사히 일을 처리하고 별 탈 없이 귀가하기를 깊이 기원하는 마음이 배어 있다. 진정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봄볕 같은 따스한 마음의 전달이고, 한결같은 응원의 목소리다. 이런 배려가 하루를 맞는 즐거움이고,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근래 들어 심심치 않게 주위에서 부부간에 오랫동안 해로하다 자연 섭리로 한쪽이 먼저 다시 못 돌아올 길을 떠나는 경우를 접한다. 어느 쪽이 앞설는지는 누구도 모르나, 혼자된 친구를 만나서 그 허전함을 들을 때 그 친구가 느끼고 있는 심정이 무명옷에 비가 스미듯 가슴 속으로 전달되어 내 일 인양 가슴이 아리다. 평생을 살아온 내 반쪽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의 감정을 당해보지 않고 어찌 알겠는가. 무심코 안방, 건넛방을 둘러보면서 찾을 수 없으면 어디를 더 찾아봐야 하나. 

일반적으로 부부간 나이 차이가 2~3세 정도이고,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5~6세 넘게 되니, 이런 통계에 의하면 남자가 먼저 앞서갈 것이라 예상하지만, 친구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순리대로 내가 먼저 간다면, 뒤에 남은 아내는 과연 그 외로움을 어찌 견디고, 남편이 차지하고 있던 가슴 속 빈터를 어찌 메울 것인가가 지금부터 걱정이 된다. 결국, 허탈감과 막막함을 아내에게 몽땅 안기고 떠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본능적 이기심의 발로라는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내가 먼저 갈 수도 없고 뒤에 남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가 우리 노인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 절실한 것은 내가 혼자 되었을 때 막막함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갈 길을 찾아가야 하겠다는 조바심이 앞서는 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혼자 남았을 때 당할 일을 VR(가상현실)로 점쳐보는 해괴한 공상을 해본다. 갈아입기 귀찮아하는 내복을 날 잡아 세탁한 것으로 내놓아 갈아입게 하고, 와이셔츠에 어울리는 넥타이를 골라주고, 밥 먹는 양이 줄어들 때 불안한 마음으로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누구에게서 느낄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얼굴을 알아보고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는 마음, 이발해야 할 때를 알려주고, 뚫어진 양말을 꿰매면서 나만을 위하여 긴 세월을 묵묵히 견디어 같이해왔다는 것을 알아간다. 늦게 철들어 조금씩 감사의 마음을 어색하게라도 표현할 때가 되었다고 여겨지는데 표현이 어렵네,

근래 황혼 이혼이 급증한다는 언론 보도가 자주 나온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어찌할 수 없는 이유야 있겠지만, 수십 년 애환을 같이 한 삶의 긴 여정을 정리하고, 서로 딴 길을 가겠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꼭 그렇게 마무리해야 하나 위로가 간다.

자식들 성장시켜 한 가정을 꾸리게 뒷받침하고, 지금도 필요한 것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나눠주는 것을 낙으로 알고 산다. 가끔 마음에 아른거리는 손녀가 살뜰한 기쁨으로 남는 시기인데. 현실로 돌아오면 오래 쓴 낡은 약도 잘 듣지 않는 몸뚱이를 잘 간수해야 할 일만 남는다. 이 길로 왔으니 가야 할 것은 정한 이치인데, 주어진 남은 시간의 선물을 아내와 같이하면서 정리해야겠지. 팔불출에 들지 않고 살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으니, 나를 앞세우기보다 더불어 같이가 잘 어울릴 때가 벌써 되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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