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 색깔 변화와 영양가

2020-06-12     식품저널

식품에서 일어나는 색깔의 변화는 제품의 품질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기준품과 다른 모양이나 색깔의 변화는 자가품질검사를 할 때 가장 먼저 점검하는 항목이다. 색깔 변화를 보면 식품이나 농산물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외관이 조금 변한 것은 겉보기 에만 차이가 있을 뿐 품질상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과의 껍질을 벗기면 색깔이 변하는데, 품질에는 영향이 없을까? 이러한 의문을 갖고 식품의 색깔 변화에 대해 분자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메일라드 반응은 영양소 손실의 지표 될 수도
식품의 갈변 반응은 효소적인 원인과 비효소 적인 원인 2가지가 있다. 효소가 관여하지 않는 비효소적 갈변 반응의 대표적 사례는 메일라드 반응이다. 환원당과 아민기가 반응하여 푸르푸랄류 화합물을 형성하고, 여기에 연결되는 여러 물질과 중합, 축합반응을 거쳐 멜라노이딘 색소를 형성하면 갈변 반응이 완료된다.

메일라드 반응은 pH가 낮으면 억제되고, 온도가 높으면 촉진되는 경향이 있다. pH가 낮으면 아민기의 비공유전자쌍이 수소이온(H+)과 결합하여 환원당에 있는 카보닐기(-C=O)와 반응할 확률이 줄어들어 메일라드 반응이 덜 일어나게 된다. 온도가 높아져 당분자의 내재 에너지가 상승하면 카보닐기가 엔올(enol) 형태로 전이가 쉬워지고, 반응성이 높아져 메일라드 반응이 촉진되는 경향이 있지만, 온도가 낮다고 하여 반응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온도가 낮을 때는 아민과 환원당의 반응이 천천히 일어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 저온에서 오래 보관해도 색은 변할 수 있다.

저온에서 갈변현상은 식품 구성분자의 조성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아미노산 중에서 라이신(lysine)은 필수아미노산 중 하나로 식물성 식품보다는 동물성 식품에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다. 라이신은 말단에 반응성이 큰 아미노기를 가지고 있는 염기성 아미노산으로서 메일라드 반응에 쉽게 관여해 식품의 갈변을 촉진한다. 문제는 라이신이 필수아미노산이므로 라이신이 풍부한 식품은 메일라드 반응이 쉽게 일어나 라이신이 손실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라이신은 동물성 식품보다는 식물성 식품에 적게 들어있으므로 식물성 재료를 가공할 때는 동물성 식재료를 함께 사용하여 라이신 손실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중성이거나 수분 함량이 높은 식재료는 가열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낮은 온도에서 조리하는 것이 좋다. 푸르푸랄계 물질이 멜라노이딘 색소를 형성하는 과정에 탈탄산 및 탈수 반응이 일어나 메일라드 반응 특유의 풍미를 낸다. 색상 및 향미 변화의 정도는 메일라드 반응의 진행수준과 비례하므로 이들 변화지표는 라이신 등 필수영양소의 과다한 손실을 막을 수 있는 경험적 지표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갈변 반응에서 생성되는 항산화물질
리덕톤은 두 개의 하이드록시기(-OH) 사이에 이중결합이 있는 엔다이올(enediol) 또는 비슷한 구조에 카보닐기(-C=O)가 인접한 물질을 말하는데, 엔올과 카보닐기 사이에서 상호구조 변화가 쉽게 일어나므로 반응성과 환원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리덕톤 물질은 아스코브산, 즉 비타민C이다. 갈변반응이 진행되면 리덕톤류 물질이 다량 생성되는데, 갈변 도중 환원력이 높아진다. 리덕톤 물질은 반응성이 높아 푸르푸랄류, 알돌축합생성물, 탈탄산 및 탈아미노 반응으로 생산되는 스트 레커 반응생성물 등 메일라드 반응에서 발생 하는 다른 물질과 결합하여 고분자의 멜라노 이딘 색소를 생성한다.

멜라노이딘 색소를 형성하는 물질은 리덕톤처럼 환원력이 높은 물질로 구성되는 데다가 엔올 구조에서 공명구조 안정화 효과로 활성산소 등에 의해 유발되는 산화를 환원하는 능력이 강한 편이다. 이로 인해 멜라노이딘 색소를 형성할 때 항산화능력도 함께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항산화능력이 있는 물질은 보통 식품으로 섭취할 때 생리활성을 나타내 건강에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멜라노이딘 색소도 실험동물에 장기간 투여하면 혈중 중성지질 및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여러 건 보고되었으며, 활성산소 소거 및 발암물질 생성 억제 등의 효과도 보고된 바 있다. 가열함에 따라 색깔 변화가 일어나면 건강에는 안 좋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갈변반응이 무조건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다.

갈변반응에서 생성되는 리덕톤 물질은 산화가 지속되면서 탄소골격이 끊어져 탄소수가 적은 휘발성 분해산물을 생성하는데, 이때 생성되는 아세트알데히드, 디아세틸 같은 휘발성 카보닐분자들은 식품의 고유 풍미를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발암효과가 보고된 사례가 있는 만큼 이들 물질의 지나친 생성은 건강에 좋지 않다.

갈변 메커니즘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식품의 갈변 반응으로 중간산물 푸르푸랄과 리덕톤들이 멜라노리딘 색소로 형성되는 과정은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들 반응성 높은 화합물이 중합과 축합반응을 하면서 탈탄산, 탈아미노, 탈수 반응도 일어나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생성되는 여러 가지 물질이 식품의 색상과 맛 풍미에 영향을 주는데, 적당하면 긍정적으로 과다하면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비타민C는 가열 조리하면 쉽게 깨진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지, 분해반응 메커니즘과 품질 효과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비타민C는 반응성이 높아 굳이 가열하지 않더라도 식품의 갈변에 영향을 준다.

 
정광호
㈜아이엔비 대표이사

비타민C가 많은 원료를 가공 조리할 때 원료에 포함된 비타민C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 깊이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식품을 만들어 볼 수 있을 듯하다. 식품화학의 기본원리와 나타나는 현상, 가공 원리 등을 조합하다보면 새로운 지식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식품을 연구하는 이유이다.  

정광호 ㈜아이엔비 대표이사는 서울대학교 농화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해태제과 식품연구소와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아이엔비는 미강 등 국산 농산자원 유래의 바이오 소재 연구개발 전문기업이다.

식품저널 2020년 5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