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왜 식물 역할을 따라 하지 못하나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350)
새가 나는 모양을 모방하여 비행기를 발명하였고 빠르게 달리는 치타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하여 자동차를 만들어 낸 호모사피엔스, 인간이다. 그 외 자연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상을 따라 모방하면서 계속 발전하였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알지 못했던 변화도 과학의 힘을 빌려 하나하나 그 원인을 알아내서 인류 생활에 활용하고 있다. 지금도 이런 노력과 탐색은 계속되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자연에서 채취하여 식량원으로 하였고 동물을 산과 들에서 사냥해서 먹던 오랜 수렵•채잡기를 지나 농사를 짓고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면서 안정적인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집단화하는 사회를 구성하는 지혜를 발휘하게 되었다. 이렇게 조성된 안정된 식생활은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되면서, 물질문명을 바탕으로 정신 문화로, 생활환경이 크게 바뀌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음악을 즐기고 그림을 그리면서 춤을 추고 글을 쓰면서 자기들의 정신적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은 물질적 만족감과는 영역이 다른 분야이다. 여러 예술 활동으로, 생물로서 기본 본능인 배고픔을 해결할 수는 없다. 어떤 정신적 만족감이나 행위도 배가 고프면 그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먹는 것은 동물인 인간 본능으로, 그 본능충족이 첫 번째 요구사항이 된다. 그래서 우리 선조는 일찍이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 얘기했겠는가.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나 볼거리가 있다고 해도 배 속이 비어있으면 생존에 위협을 느껴 본능적으로 살려는 동작, 즉 먹을 것을 찾게 된다. 물질이 풍족해야 다음 정신 영역으로 우리 생각을 돌릴 수 있다. “의식(衣食)이 족해야 예의를 안다”라는 얘기는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이런 요구에 모든 나라의 지도자는 국민에게 먹을거리가 충분하도록 공급하는 것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었고 다음 편안한 잠자리, 그리고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옷, 즉 동물로서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세계 최빈국으로 떨어진 이북의 지도자도 정책의 최우선을 이밥(쌀밥)에 고깃국이라 왜 했겠는가. 사실 먹고사는 문제, 즉 본능적 욕구가 만족되면 다음은 정신 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이 인간사회의 문명과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물질적 풍요 다음으로 정신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바램은 인간만이 가진, 새로운 영역 탐구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고 이는 고유한 사고의 능력에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지금의 과학기술 수준은 인류 출현 250만 년 역사상 가장 발달하였고 가속도가 붙어 발전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인간들 스스로도 이런 발전양상이 어떻게 진행되어 도대체 무엇을 더 이룰 것인가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초고속으로 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찬탄을 넘어 이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인공지능(AI)은 스스로 인간의 관리능력을 벗어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발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그 기능을 개발한 인간의 지식수준을 넘어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자기가 개발하여 이용하고 있는 기술의 산물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반면에 아직도 미지의 세계에 놓여있는 분야도 있다. 우리 지구를 푸른 초원으로 덮고 있는 식물의 기본 작용, 즉 탄소동화작용의 기작과 반응방법은 상당 부분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왔으나 아직도 인간에 의해서 식물이 순간마다 만들어 내는 전분, 당, 단백질, 지방, 그리고 다양한 비타민 등 미량성분은 인위적으로, 공장에서 생산할 수 없다. 이들 성분을 식물들이 만드는 과정, 즉 땅에서 물과 질소 등 기본적인 영양성분을 흡수하고 태양의 에너지를 이용, 공기 중 탄산가스를 고정시켜 천연물을 만든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잘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식량자원인 전분질, 단백질, 유지는 공장에서 싼값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들 기본 먹이자원을 인위적으로 대량 생산 가능하다면 인류의 먹이인 이들 식량자원을 더 이상 식물에 의존하지 않고 공장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인간 지식과 지혜의 한계를 이들 기본 식량자원의 생산 벽에서 느끼고 있다. 식물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식량문제를 언제쯤 해결되려는 지는 예측할 수 없으나 지금 오만의 극치에 이른 호모사피엔스의 한계를 느끼는 분야이고 인간이 자연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하긴 공기 등 기체를 이용하여 단백질을 생산하려는 시도는 이루어지고 있으니 어떻게 더 발전하려는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