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새암(샘)의 추억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349)

2026-03-25     신동화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내가 태어난 동네는 시내에서 꽤 떨어진 논과 밭이 주위를 감싼 평야 한가운데 있었다. 사방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가을이면 황금색 벼가 물결을 이루는 풍요로운 들녘은 장관이었다. 마을의 상징인 수백 년 나이 든 당산나무가 우람하게 마을을 지켜왔다. 동내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신작로에 촘촘히 심어놓은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바람 따라 가벼운 춤을 추면 어찌 그 모습이 자연이 주는 큰 축복이라고 아니 느낄 수 있겠는가. 거기에 동네 앞뒤로 작은 개천이 흐르고 있어 풍요롭고 운치가 넘치는 정경을 이룬다.

그런데 한 가지 어려운 것은 먹을 물이다. 물이 많은 논이 있고 개천이 흐르고 있으니 지하에 물이 풍부할 터인데도 집안에 따로 샘이 있거나 그 편한 작두 펌프 하나가 없었다. 30~40가구가 사는 동네에서 모든 거주자가 300~400m 떨어진 작은 샘물에 의존하여 식수를 해결하고 있었다. 샘(새암)은 작은 언덕 밑에, 주위에는 항상 풀과 키 작은 관목이 자라고 있었고, 정갈하게 시멘트로 바닥을 다듬고 녹강(시멘트 관)을 묻어 샘을 만들었다. 샘물 안에는 몇 마리 작은 물고기가 항상 헤엄치고 있어 물이 살아있음을 알려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샘에서는 일 년 내내 일정량의 샘물이 계속 밖으로 흐른다. 어릴 때도 어찌하여 계속 이렇게 물이 계속 땅속에서 솟아날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그 이유를 알기에는 지식이 부족한 때였다. 샘물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 물은 따뜻하였다. 하여튼 온 동네 사람들의 식수로 전연 부족하지 않게 지하수를 계속 품어내었고 동네 어머니나 누나들 그리고 장정들이, 먹을 물을 퍼 나르는 공동의 장소였다.

집마다 물을 이고 나르는 동이가 있었고 집에 따라서는 양철통을 양쪽으로 달아 맨 지게로 샘물을 퍼 나르곤 했다. 이 지게로 물을 퍼 나르는 일은 대개 젊은이들이었고 나도 이 축에 끼어 때때로 우리 집에서 필요한 식수를 퍼 날랐다. 집마다 물을 받아 놓는 큰 독이 부엌에 있었고 이 독에 식수를 가득 채워놓곤 하였다. 이 물로 밥 짓고 세수하는 데 썼다. 빨래는 개천에서 하니 이 샘물을 쓸 필요는 없었고.

집안에 샘이 없는 이유는,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 동네 형상이 큰 배의 밑바닥에 있는 모양이라 땅 뚫으면 배 밑창에 구멍을 내는 꼴이 되어 이 배, 즉 우리 동네가 큰 화를 당할 것이라는, 내려오는 경구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의 위치가 남쪽으로는 내장산과 방장산이 떡 버티고 있어 꼭 뱃머리 형태이고 북쪽은 텅 트여있어 전체 형극은 꼭 배를 닮았다고 충분히 추측이 가능하다. 그래 큰 배의 맨바닥에 동네가 형성되어 있으니 땅 밑, 즉 배의 밑창을 절대 뚫어서는 아니 되게 되어있다. 몇백 년 이어서 살아온 선조들의 경구가 계속 전해졌고 이어지는 후손도 이 무언의 전언을 다른 이의 없이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여 허망한 풍경을 접하였다. 그 정들었던 샘의 흔적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쓸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농지정리 사업으로 기존의 논밭을 밀어 반듯한 구획으로 나눠놨고 우리가 정들었던 샘도 그 구획 어딘가에 묻혀 버렸다. 그저 짐작으로 그 위치를 가늠할 수는 있었으나 눈에 선한 샘터의 모습은 머릿속에만 존재하지 현실은 그냥 평평한 논 한 뙈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사시사철 흘러나오던 물줄기는 어디에 묻혀 지금도 시원한 물을 품어내고 있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샘까지 가는 샛길과 그 주위 실개천을 머리에 그려보니, 그 형상은 그대로인데 눈을 뜨니 완전히 다른 정경이 펼쳐져 있다. 가버린 풍경에 아쉬움이 있지만 어쩌나. 시대가 변하고, 또 달려져야 하니.

샘물을 식수로 삼았던 우리 동네 주민들은 이제 수돗물로 식수, 생활용수로 하고 있고 물지게 없이 수도꼭지만 틀면 소독한 물이 나오니 얼마나 편리하게 되었는가. 그 물을 받아 맛보는 내 심정은 옛 샘에서 길어왔던, 살아있는 물맛과 비교가 되어 다시 옛 정취를 아쉽게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위 환경, 생활여건, 그리고 사는 집도 끊임없이 변하고 또 달라지고 있지만, 나이 탓이런가,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고 나에게 친숙했던 주위, 그 환경이 자꾸 그립다. 변화 없이 발전할 수는 없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변하지 않은 옛것의 모습도 내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방편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나이 탓하는 사람의 넋두리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