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과’ 너머의 진실…기후ㆍ고령화 파고, ‘전략적 경영’이 과수 농가 살린다

농경연, 과수농가 경영구조 분석 보고서 발표  이상 기상 상시화에 인건비 폭등…‘주먹구구’식 농사론 생존 불가  데이터 기반 ‘전략적 농가’, 일반 농가 대비 생산성 월등히 높아 

2026-03-10     나명옥 기자
과수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농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전북 김제 소재 산지뜸농원

최근 사과와 배를 비롯한 주요 과일 가격이 급등하며 이른바 ‘금사과’ 논란이 가열됐다. 대중의 시선은 당장 장바구니 물가에 쏠려 있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 과수산업이 직면한 처절한 생존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대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한 과수 농가의 농업경영구조와 정책과제(김종선 · 박성진 · 전무경)’ 보고서는 기후변화와 인구 구조 변화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우리 과수 농가가 나아가야 할 ‘생존 지도’를 제시했다.

기후변화와 인건비의 ‘역습’…흔들리는 생산 기반
국내 과수산업은 현재 기후변화, 고령화, 인건비 상승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과수 피해의 65.3%가 개화기 ‘이상 저온’에 집중됐다. 특히 사과와 배는 봄철 저온 피해가 연례행사처럼 굳어지며 생산량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졌다. 2023년 사과 생산량이 최근 10년 내 최저치를 기록하며 가격이 60% 이상 치솟은 사태는 기후 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확인시켰다.

노동력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6대 과일 재배 농가의 60세 이상 비중은 무려 79.6%에 달하는 반면, 미래를 책임질 40대 이하 농가는 4.1%에 불과해 생산 인력의 단절 위기가 현실화됐다. 이는 곧 경영비 부담으로 이어졌다. 사과 농가의 경우, 10a당 고용 노동비가 2010년 33만 8000원에서 2023년 83만 5000원으로 2.5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제 단순한‘성실함’만으로는 최저임금 수준의 수익조차 보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위기에 강한 ‘전략적 의사결정’ 농가의 비밀
보고서는 농가들의 의사결정 방식을 정밀 분석해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그룹은 ‘전략적 의사결정(SD)’ 유형과 ‘성공적 의사결정(SuD)’ 유형이다. 이들은 주로 50세 미만의 젊은 경영주이거나 연 소득 1억 원 이상, 재배 규모 2ha 이상의 대규모 농가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 농가는 일반 농가와 확연히 다른 경영 패턴을 보였다.
첫째, 환경 변화를 수동적인 위협이 아닌 ‘경영 혁신’의 기회로 인식했다. 스마트팜 시설 도입이나 기계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둘째, 데이터에 기반해 품종 전환이나 시설 투자를 결정하며, 수작업 비중을 낮추기 위해 수형 개선(평면수형 등)을 단행했다. 분석 결과, 이러한 전략적 농가들은 일반 농가에 비해 단위 면적당 소득이 높을 뿐만 아니라, 기상 재해 발생 시에도 피해 복구와 대응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

인식과 실행의 괴리…계획 수립 농가는 단 7.4%
조사 결과, 과수 농가의 45.9%가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실제로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수립한 농가는 7.4%에 불과했다. 이러한 ‘실행의 공백’이 발생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재정적 불확실성’이었다. 농가들은 시설 현대화나 스마트 장비 도입에 필요한 자금 확보 계획을 세우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적정 재배지 정보나 신품종의 시장성 등에 대한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부족한 점도 발목을 잡았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을 때 기상 재해로 한순간에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위험 회피 성향’도 농가들의 실행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농사꾼 넘어 경영인으로”…실전 경영 혁신 제언
보고서는 과수농가가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세 가지 실전 전략을 제안했다.
첫째, ‘디지털 경영 관리 도구’의 도입이다. 감에 의존하는 농사에서 벗어나 농업경영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기상 데이터와 투입 비용, 예상 소득을 수시로 점검하고 영농일지를 디지털화해 비효율적인 노동 투입 구간을 찾아내는 것이 경영 혁신의 시작이다.

둘째, ‘기계화 용이 수형’으로의 과감한 전환이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동 가위, 무인 방제기, 수확용 고소 작업차 활용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복잡한 수형을 기계 접근이 쉬운 평면수형(2D 수형)이나 V자 수형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는 노동 시간을 최대 30% 이상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셋째, ‘기후 리스크 분산’이다. 특정 품종에만 치중하지 말고 개화기가 서로 다른 품종을 혼식하거나, 만개기 저온 피해를 막기 위한 미세 살수 시설 및 송풍법 등 방조·방풍 시설 투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을 선택이 아닌 필수 경영 항목으로 편성해야 한다.

정책 패러다임, ‘시설 지원’에서 ‘경영 지원’으로
과수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농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보고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다.
단순히 스마트팜 시설비를 보조해 주는 하드웨어 중심 지원을 넘어, 농가가 자금 계획을 세우고 시장 변화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경영 컨설팅’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략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청년 및 대규모 선도 농가를 집중 육성해 이들이 지역 거점으로서 기계화와 디지털화를 선도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산자 조직(APC)을 통한 공동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개별 농가가 대응하기 힘든 유통 환경 변화와 기상 재해에 대해 지역 단위의 공동 방제와 공동 마케팅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리스크를 분산하고 시장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과수 농가가 대응하기 힘든 유통 환경 변화와 기상 재해에 대해 지역 단위의 공동 방제와 공동 마케팅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리스크를 분산하고 시장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사진=전북 김제 소재 산지뜸농원의 사과 출하 장면

대한민국 과수산업의 미래는 단순한 ‘농사꾼’에서 데이터 기반의 ‘경영인’으로 거듭나는 농가가 얼마나 많아지느냐에 달려 있다. 

이 보고서는 디지털 기술과 전략적 판단의 결합만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과수 농업을 지탱할 유일한 무기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