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지만 더 깐깐해진 AI 시대의 소비자 ‘제로 클릭’과 ‘프라이스 디코딩’

손세근의 CS칼럼 117,

2026-03-05     손세근 명예총장
손세근 식품안전상생재단 명예총장

‘트렌드 코리아 2026’이 올해의 트렌드로 제시한 10개 키워드 가운데, 식품·외식 산업과 관련하여 가장 피부로 와닿는 개념으로는 ‘제로 클릭(Zero-Click)’과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이 눈에 띈다. 이 두 키워드는 따로 보면 디지털 트렌드와 가격 인식 변화처럼 보이지만, 식품·외식 현장에서는 이미 하나의 소비 행동으로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요즘 외식 매장에서 손님이 가장 오래 바라보는 것은 메뉴판이 아니다. 키오스크 화면이나 QR 주문 페이지, 혹은 배달 앱의 AI 추천 문구다. “이 시간대에 많이 주문한 메뉴입니다” 또는 “혼밥 고객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은 선택입니다” 등과 같은 문구 말이다.

소비자는 더 이상 메뉴 전체를 훑지 않는다. 클릭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추천된 한두 개의 선택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외식 산업에서 나타나는 제로 클릭의 실체다.

그러나 제로 클릭 환경에서 더 민감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가격이다. 클릭을 줄인 대신, 소비자는 가격을 더 날카롭게 분석한다. 이것이 프라이스 디코딩이다. 예를 들어 프리미엄 햄버거 세트가 1만 4000원, 일반 분식 세트가 8000원이라면, 과거에는 단순히 “비싸다/싸다”의 문제였지만, 이제 소비자는 이렇게 묻는다. “왜 햄버거가 이 가격인가?”, “패티, 번, 소스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이 가격이 ‘기분 좋은 소비’로 납득 가능한가?”. 특히 외식 가격 인상 국면에서는 가격 인상 자체보다 설명이 부족할 때 더 큰 불만이 생긴다.

쉐이크쉑과 파이브가이즈의 사례로 본 프라이스 디코딩의 차이
햄버거 한 개에 만 원이 넘는 시대다. 이제 소비자는 “비싼가?”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왜 이 가격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프라이스 디코딩이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보면 쉐이크쉑과 파이브가이즈는 같은 프리미엄 버거임에도 전혀 다른 가격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쉐이크쉑의 가격은 비교적 조용하다. 대표 메뉴인 쉑버거는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프리미엄을 선언한다. 이 가격은 소비자에게 많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뉴욕에서 시작된 파인 캐주얼”, “좋은 재료를 쓰는 깔끔한 버거”라는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메뉴 수는 적고 선택은 단순하다. 가격은 안정적이며, 추가 옵션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쉐이크쉑의 가격은 이렇게 해석된다. ‘조금 비싸지만, 실패하지 않는 선택.’ 그래서 이 브랜드는 제로 클릭 환경에 강하다. AI 추천 문장으로 바꾸면 “프리미엄 버거 입문자에게 무난한 선택”이라는 한 줄로 요약된다.

반면 파이브가이즈의 가격은 처음부터 질문을 던진다. “햄버거가 왜 이 가격이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단품 기준으로 보면 가격은 확실히 높다. 
그러나 이 가격은 의도적으로 설명을 요구한다. 패티는 기본 2장이고, 토핑은 무료로 무제한 추가된다. 감자튀김은 ‘과하다’고 느껴질 만큼 넉넉하게 제공된다. 

주문 즉시 조리한다는 점도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파이브가이즈의 가격은 숫자가 아니라 구성으로 말한다. ‘우리는 양과 밀도로 승부한다.’ 이 가격은 고민 끝에 납득되는 가격이다. AI 추천 환경에서는 “배부른 한 끼가 필요한 날”, “포만감 중심의 선택”이라는 조건이 붙어야 비로소 선택된다. 이 차이는 단순한 가격 전략의 차이가 아니다. 프라이스 디코딩 방식의 차이다.

쉐이크쉑은 가격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구조’로 설계했고, 파이브가이즈는 가격을 ‘설명해야만 완성되는 구조’로 만들었다. 그래서 전자는 제로 클릭 친화적이고, 후자는 프라이스 디코딩 의존적이다. AI 시대의 소비자는 클릭을 줄였지만, 판단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판단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쉐이크쉑과 파이브가이즈의 가격 차이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쉐이크쉑의 가격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프리미엄’이고, 파이브가이즈의 가격은 ‘고민한 뒤에 납득되는 프리미엄’이다. 가격이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때, 그리고 AI가 그 말을 정확히 요약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선택의 테이블에 오른다.

결론
AI 시대의 소비자는 모순적이다. 쇼핑에 쓰는 시간과 노력은 '0'에 수렴하길 원하면서도(제로 클릭), 동시에 자신이 지출하는 가격의 구성 원리는 현미경처럼 뜯어보길 원한다(프라이스 디코딩). 이 두 가지 상반된 트렌드는 AI라는 거대한 기술 위에서 '신뢰'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진행된다.

소비자는 AI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기업의 가격표를 해부하고 있다. 기업은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대신, 그 비용을 투명성을 입증하는 데 써야 한다. AI가 제품을 분석했을 때, “이 가격은 합리적이고 정직하다”는 판정을 내려야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손세근(트렌드부머)|식품안전상생재단 명예총장
CJ제일제당 CCO(고객만족 총괄책임자)를 역임했고, 현재 칼럼니스트이자 청년 멘토로 활동 중이며, “꿈, 일, 그리고 삶, 멘토를 만나라”를 공저했다. (블로그: blog.naver.com/steve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