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45)

2026-02-11     신동화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항상 옆에 계시고 필요할 때마다 따뜻한 격려의 말씀과 자애로운 모습으로 내 마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계셨던 어머니,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성인 된 후 한참 지난 다음이었다. 친구들의 어머니가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를 해주면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밀쳐놓곤 했다. 아픔은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말로 들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손톱 밑의 가시가 그렇게 신경 쓰이게 만든다는 것은 그 경우를 당해보지 않고 감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몇 년 동안 노환으로 약을 드셨지만 그래도 보통의 건강을 유지하셨고 특별한 정신적 장애도 없이 80을 넘기셨으며, 그 연세에서도 바깥출입과 멀지 않은 아들 집이나 가까이 시집간 누나의 집에 가셔서 며칠씩 쉬고 오시곤 하셨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모여 제주도 여행도 같이하였다. 우리는 종종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이 변하지 않고 오래오래 내 곁에 그대로 있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아간다. 아침 출근길에 잠시 떠나는 내 집은 당연히 퇴근하여 돌아올 장소이고 내가 타고 가는 버스나 전철은 어김없이 내일도 내 앞에 와서 나를 태우고 원하는 장소까지 큰 탈 없이 움직일 거라 믿는다. 이것이 평범한 일상이다. 그러나 생활이 그 일상에서 벗어났을 때 혼란과 고통이 뒤따라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 그것이 그 모습대로 내일도 있으리라는 것을 별로 의심치 않는다. 어찌 보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그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보통 변해야 살고 발전한다는 것은 누구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일반론이긴 하지만 그대로의 옛 정취나 옛것에서 느끼는 감정은 변치 않고 있을 것에 대한 안도감, 있음으로써 느끼는 평상심의 결과라고도 여겨진다. 그러나 어느 날 그렇게 믿고 그러리라고 여겼던 일상의 변화가 갑자기 찾아왔다. 그날도 내 직장, 학교에 갔다가 외부에 일정이 있어 꽤 먼 거리를 차를 몰고 찾아가 여러 사람과 협의하고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절차를 거쳤다. 책임자로서 업무를 끝내고 다시 귀가하는 중 어머님이 계시는 고향 집을 들르는 것은 당연한 일, 도착한 집안이 썰렁하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며칠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다는 형님의 얘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느낌이 너무 좋지 않음이 직관적으로 감이 온다. 옆집, 사촌에게서 답이 온다. 병원으로 서둘러 갔으나 이미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의 모습이 나를 맞는다. 멍하다는 느낌 외에 다른 생각이 없다. 이렇게 해서 내 곁을 어머님이 떠나셨는가. 전연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냥 환상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럴 수는 없다. 내 작별 인사도 받지 않고 그냥 훌쩍 떠나실 어머님이 아니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부정하고 아니라고 우겨봤자 현실은 다름없는 그대로이다. 이어지는 3일간, 공백 같은 시간을 보냈다. 친지들, 동료들의 위로 문상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린다. 상복을 입고 나서면서 변화된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다. 

어머니는 그렇게 하여 나와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훌훌히 떠나셨다. 그 무엇이 어머니의 갈 길을 서두르게 했는지. 가신 뒷자리가 너무 허전하고 텅 빈 공간이다.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여백이 가슴 한가운데 큰 공터로 남아 뿌리를 잃고 흔들거리는 상태가 된다. 

일찍이 아버님이 떠나실 때는 너무 어려 심정을 가심을 가늠할 수도 없었으나 어머님과의 이별은 온전한 마음으로 더 크게 아픔을 느끼는 나이가 되어서 겪는다. 탄생했으니 소멸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그 소멸의 순간에서 느끼는 자식의 심정은 실로 허전하다. 어머님이 계셨던 방은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이 공간을 채우고, 주인이었던 분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네. 새롭게 만들어진 무덤에 엎드려 마음을 전하나 생전의 따스함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계신다는 것을 아는, 안타까움만이 가슴에 스민다. 가신지 꽤 오래되었어도 마지막 작별의 인사도 못 한 그 순간이 지금도 되돌리고 싶은 지난 시간이다. 어느 분의 경우, 나이 90을 넘어 자신의 임종 때도 어머니를 부른다는 얘기는 나에게도 지금 적용되는 심정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