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호댕까 호이, 호이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35)

2025-11-26     신동화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호댕까 호이, 호이
윗말의 뜻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어머니, 형제자매는 아마도 기억 구석에 생생히 남아있을 가사다. 사실 나도 이 말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 그 근원을 알고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일 것이다. 대학생이었던 삼촌이 만화책을 한 권 선물하였다.
아프리카인들의 생활을 재미있게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코끼리가 끌고 가는 열차이며 캥거루의 뜀뛰기. 여기에 얼굴색이 우리와 다른 부족이 모여 징 치고 꽹과리(우리와 비슷) 치며 모닥불 피고 즐겁게 노는 광경이 나온다. 이들이 춤추며 노래하는데 그 노래의 가사가 잘 안내되어 있었다.

“호댕까 호이 호이∼”. 이것이 앞 절이고 뒤에 더 이어진다. 그 가사가 얼마나 신기하고 이색적이었는지. 바로 아래 동생과 같이 그 가사에 우리 나름대로 곡을 붙여 노래를 지어냈고 거기에 만화에 그려진 대로 춤을 추어 보면 박자도 맞고 흥이 돋아졌다. 인터넷에서 이 가사를 입력하고 그 출처를 알아내려 했으나 답을 찾지 못하였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것이란 힌트를 주어도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만화 작가의 머릿속에 있던 것을 끄집어내서 문장으로 만들었고, 그 가사에 음률을 맞추도록 표기를 해 놓았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가족 간에 잘 알려진 대로 나는 음치임이 확실하다. 아마도 집안 내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 남동생은 그래도 제법 유행가뿐만 아니라 명곡까지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잘 부르고 가끔 가족 모임에서는 박수까지 받는다. 아마도 교육대학 덕이 아닌가 여기고 있다.

그러나 내 경우, 가끔 있던 모임에서 노래하란 지명을 받으면 극구 사양하다가 밀려, 밀려 구석에 몰리다 보면 내 비장의 준비 곡, “호댕가”를 부른다. 과연 누가 이 음악을 알겠는가. 모두가 어리둥절하고, 부르고 나면 어디 노래냐고 묻는다. 아프리카 원어민 노래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면 그 누가 감히 이의를 달 수 있는가. 가사와 음정을 누구도 알지 못하니 내 노래평가는 물론 불가능할 것이다. 참고로 내 중학교 음악 실력은 “양”이었다. 

수우미양가로 평가하는 당시 방법에서 다른 과목은 그래도 우, 수도 있었으나 유일하게 양을 받은 실력, 들장미를 부르고 그 결과를 선생님께서 평가했는데 올라가야 할 음절에서 내려가 버렸으니 “가”를 주지 않는 것도 참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이런 실력이니 한참 유행하는 노래를 제대로 부른다는 것은 언감생심, 그냥 들어 주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극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공식행사에서 애국가를 제창할 때는 가사는 외우고 있으니 입을 딸싹거려 중얼거리는 수준으로 구색을 맞춘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소양은 갖췄다고 마음속으로 위안하고 있다.

호댕가를 몇 번 들어본 친지나 가족들은 이제 나에게 노래 부를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미 뻔히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곤욕스러운 노래 부르기를 면해가기도 하는데, 나이 먹다 보니 이제 내 사정을 아는 친구, 가족들이 내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고, 더욱이나 이 노래 부를 기회가 없어진 것에 대하여 마음 한편으로 아쉽고 섭섭하면서도 가슴 아린 감정이 일곤 한다. 

지나온 과거를 지금 돌이켜보면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내 혼을 모두 쏟아 좋아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지 못한 것에 지금도 후회가 된다. 아내는 서양화를 전공하여 지금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그 만족스럽고 의지에 찬 분위기가 마냥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지나간 것을 붙들고 아쉬워할 시간이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순간, 내 생각을 글로 나타내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차별화된 기능이고 갖추지 못한 취미를 대신하며 무한 애를 쓰는데, 글쎄 읽는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기는 밀쳐놓고 내 마음속에서 만이라도 만족한다고 그냥 치부하고 산다.

오늘도 이 글을 쓰는 내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한 행운목이 꽃대를 힘차게 밀어내고 있다. 며칠 내에 꽃을 피울 것이고, 아마도 옆방까지 매혹적인 향기를 전달하여 이웃까지 즐겁게 할 것이다. 가까운 가족들을 초대하여 꽃 잔치를 해야겠다. 꽃의 아름다움과 그 향기를 혼자 즐기기에는 너무 아깝다. 

오댕까에 이어 “찡찡로 께야 찡찌로께이”를 후렴으로 부를 기회는 되지 않겠지만 즐거운 모임이 될 것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