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10월이 간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30)

2025-10-22     신동화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일 년 중 상달, 10월이 간다. 한해 12달 중 어느 달이고 특징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10월은 연중 으뜸으로 치는 것은 10월이 주는 감정과 자연조건이 우리 삶에 가장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우선 대개의 기온, 낮 기온이 20~23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당한 온도를 유지한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는 얇은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10~15도로 떨어진다. 우리 몸이 적응하기에 가장 적당한 변화이다. 온도만 떨어지는 게 아니고 습도도 낮춰, 습도 60~70%를 유지하니 몸이 적응하기 무리가 없다.

온도와 습도, 가장 중요한 외기의 조건이 맞는 계절이 10월이다. 그래서 10월을 상달이라 일컬어도 전면 거부감이 없다. 선뜻한 기운을 느끼면서 일어나는 아침은 얼마나 상쾌한가. 더욱이나 조금 먼 산에 걸쳐있는 안개가 멈춘 운무를 감상하는 것은 이 가을 10월이 아니면 그 운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조용히 운무 보고 있으면 햇빛이 비침과 때를 같이하여 서서히 거치면서 본래의 산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장관이란, 이 시기가 아니면 감상할 수 없다.

10월로부터 중순, 그리고 말, 이 나라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기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풍성한 김제 평야의 벼, 여름에 계속 이어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벼를 길러낸 논의 정기가 한껏 품어 나오는 정경을 그 어느 때 감상할 수 있으랴.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벼 이삭 위에 정적을 즐기는 메뚜기는 한껏 살이 올라 다음 세대를 몸 안에 가득 안고 자기가 멈춰야 할 때를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논 옆 밭에는 늦은 봄 심어놓은 콩이 꼬투리에 알찬 결실을 안고 있으며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훌쩍 커서 같이 자랐던 동료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수수도 진홍색 껍질에 연한 누런색을 안고 있는 씨앗을 부끄러운 듯 안고 있다. 그것뿐인가. 한 편에는 고구마 줄기가 힘껏 자라온 고랑을 덮고 청정한 초록의 잎사귀가 아직도 갈 길이 먼 듯 싱싱함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밑에 비밀히 저장해 놓은 내 씨를 잃은 새라 꼭 감추고 있는 모습이다.

이른 아침 논길을 걸으면서 발에 차이는 이슬이라, 가을 이슬, 종아리에 와 닿는 기분 좋은 차가움, 이때가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신고 있는 고무신이 흠뻑 해져도 그 감각은 결코 거북하지 않고 상쾌하다. 이쯤, 햇빛이 찬란하게 떠오르면 이른 종달새는 여름 동안 키워 놓은 자기 새끼들과 합주를 하기 위해 하늘 높이 오르고 밑에 있는 작물과 동물들과 아쉬운 이별을 알린다. 그렇다 이 모든 자연의 생물과 동물이 어찌 그냥 생겼겠는가. 하나하나가 자기의 몫을 갖고 태어난 뜻이 있는 것을. 

이 10월에는 같이 살아온 식물과 동물들에게 우리에게 베푼 정신적, 물질적, 혜택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겨울을 대비하여 한동안 이별을 해야 하는 아쉬움을 같이하기도 한다. 과수원 옆을 지나면서 여름의 따가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수줍은 듯 붉은 얼굴을 내민 사과에서 진정 가을, 10월의 절정을 느낀다. 어찌 사과뿐이랴, 집 뒷마당에 한가하게 잊혔던 감나무에는 녹색으로 숨겨져 있던 탐스러운 감들이 나 여기 있다고 알리려 고운 노란색으로 갈아입고 자기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이 10월이 아니면 이런 변화를 어찌 즐길 수 있겠는가. 은행나무는 봄에 보이지 않게 숨겨놓은 작은 꽃을 피우고 나서 키운 노란 열매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그 만의 냄새로 자기 존재를 온 세상에 알리는데 다른 동물의 접근을 막는 한 수단이 아닐까. 10월에 어찌 단풍의 경치를 빼놓을 수 있으랴. 온 산을 모자이크한 그 찬란한 모습의 연출, 그 어느 누가 이런 장관을 만들 수 있으랴. 만산이 서로 다른 색깔로 곱게 단장을 해 놓고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으니 이야말로 군자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갖가지 색으로 물든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빨려들어 한 조각 편린으로 묻히는 착각에 빠져든다. 매일매일 변화되는 색의 조화를 과연 누구의 작품인가.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말 없는 외침인가.

근래 기후변화로 가을이 한 달씩 싹둑싹둑 잘라내 겨울과 여름으로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진정한 가을은 10월 한 달이라고 하는 데 공감이 가지만 10월 앞뒤로 즐겨왔던 가을, 이 계절이 짧아졌어도 10월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