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가을꽃이 좋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29)
가을, 어찌 여리고 가느다란 줄기 꼭대기에 자리 잡은 가을 대표 꽃, 코스모스를 빼놓을 수 있겠는가. 맑은 하늘과 서늘해지는 바깥공기, 상쾌함과 함께 꽃과 잎과 같이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면 가을이 내 곁에 왔음을 느낀다. 거기에 파란 하늘이 배경 되면서 군락을 이룬 모습은 장관이다. 더욱 땅 가리지 않고 척박한 곳에서 자라면서 꽃을 피우는 생명력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품성이 아닐까 여겨진다. 눈을 돌려보면 길옆 나 여기 있다고 속삭이는 쑥부쟁이는 여린 보라색 꽃잎 중심에 노란 꽃술이 자리한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을의 외로움을 같이하는 동반자가 된다. 비슷하게 생긴 구절초는 꽃도 독특하지만, 약초로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으니 단순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인간에게 또 다른 정감을 주고 있다. 기린초는 어떤가. 황금색의 작은 꽃들이 무리 지어 피면서 자리를 골라 주로 바위틈이나 척박한 땅에서 자라 야산 등산 때 우리 눈과 마주친다.
가을 하면 국화과에 속하는 산국, 혹은 소국, 들국화를 어찌 빼놓을 수 있으랴. 개량하여 꽃 한 송이가 어른 주먹 크기를 넘는 각종 개량 국화꽃보다는 군집하여 매력 넘치는, 매혹적인 향기를 품어내는 들국화는 가을의 상징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는 표현이다. 언덕기슭이나 잡초가 우거진 속에서도 생명력을 발휘하여 가을의 품격을 높여주는, 소국, 들국화는 가을과 함께 우리 산하를 풍요롭게 하는 전령의 하나이다. 들판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망초, 그리고 사촌인 개망초, 단순하면서도 자기 특색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은 쓸쓸해진 들판을 한결 포근하게 해준다. 단순하고 꾸밈없는 옅은 보라색 꽃잎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그 진가를 감지할 수 있다.
야생에서 피는 가을꽃들은 대부분 화려하지는 않으나 단순한 모양과 독특한 형태로 자기의 존재를 확실히 알리고 있다. 낮아지는 바깥 기온에 적응하여 대부분 작은 잎사귀에 가는 줄기를 갖추고 있으나 이들의 생명력은 다른 식물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을 야생 가을꽃은 그 꽃의 존재가치를 자기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계속하여 꽃을 피우고 씨를 맺혀, 다음 세대에 자기의 유전인자를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 가을들녘에 이들 야생화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길거리에 군집하여 바람에 흔들거리는 코스모스의 춤을 감상하면서 어찌 우리는 애창곡 하나를 부르지 않으랴.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흥얼거리는 가락에 꽃도 덩달아 춤을 춘다. 내 마음이 꽃에 전달되나 보다.
돌 틈이나 시멘트길 옆, 비좁은 공간에 비집고 자리 잡은 안 수국은 그 아름다운 색깔의 조화에 눈이 떼기가 어렵다. 노랗고 진한 붉은색 꽃잎의 조화와 가운데 모신 꽃술의 모습은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진한 초록색 잎사귀는 꽃을 받치는 역할을 충실히 하며 존재감을 나타낸다. 가을을 넘어 초겨울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여 지난날을 문득 생각나게 한다. 옆의 식물들이 모두 쓰러지는 환경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한쪽에는 봄에 심어 놓았던 나팔꽃이 아직도 작은 꽃을 내밀어 여름인가, 가을인가를 헷갈리게 한다. 진 보라색 꽃잎의 안쪽으로는 흰색을 띄워 꽃술과 비교되는데 쌀쌀한 이 가을 날씨에 어떻게 벌을 초청하려 이 자태로 나와 얼굴을 맞대는지 모르겠다.
잠시 눈길을 아래로 낮추면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웠던 별꽃은 그 앙증스러운 작은 노란색, 그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땅에 거의 붙어있으면서도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달하면서도 한여름 잠깐 쉬고 이 가을날에 다시 꽃을 피운다. 이 작은 식물의 생명력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쪼그리고 앉아 작은 꽃 모습을 감상하다 보면 가끔은 이 작은 꽃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한다. 지금 함께한 이 별꽃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인가. 구부리고 있는 나에게 억새가 위에서 인사한다. 억새꽃은 은백색의 깃털 모양으로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은 가을의 상징이기에 충분하다. 습지에 가 있으면 갈대를 마주하며 또 다른 갯가에서 가을 정취를 함께 즐길 기회가 된다.
늦가을, 야생 꽃들을 즐기다 잠깐 먼 산을 보면 형형색색, 단풍이 가을을 품어내고 있는데 이들을 어찌 아름다운 한 폭의 조화를 이룬 가을꽃이라고 아니할 수 있는가. 조합과 융합의 극치를 보이는 아름다움이다. 이들 경치를 즐기는 담담한 행복을 오늘도 느끼면서 살고 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