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우리는 협업하는 정신이 있었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16)

2025-07-09     신동화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인간이 타 동물과 비교해 육체적으로 열악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직립하여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 등 몇 가지 장점이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서로 협동, 협업하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 준 전기는 농업과 가축 사양이 생활 방편으로 일상생활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농업과 가축 사양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기대하는 결과를 낼 수 없었고 몇 사람이 같이 협력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또는 여러 동물을 사육하기 위해서는 혼자 감당하기는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몇 사람이 힘을 합쳐야 주어진 일을 더 많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다.
 
우리 민족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 두레, 품앗이, 그리고 울력을 일상화하였다. 이런 행동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주어진 일을 해내는 집단행동을 말한다. 울력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서 하는 일을 뜻하고, 품앗이는 힘든 일을 거들어주어서 서로 품을 주고 갚고 하는 일, 품앗이한다. 두레는 농민이 힘을 모아 공동으로 일하려고 만든 모임을 뜻한다. 두레에는 농악이 빠질 수 없다. 악기로 흥을 돋우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농사일을 하도록 독려하는 잔치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두레의 모습을 갖춘 행사를 하고 있으며 전통문화로 이어지고 있으나 기계화에 의한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점점 그 열기는 식어가고 있다. 절박한 필요의 조건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이 함께하는 이런 고유한 문화와 정신은 현대에서도 이어받아야 할 중요하고 유용한 우리의 정신문화이다.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같이, 함께하는 것은 혼자보다 낫다는 것은 인간이 출현한 이후 자연스럽게 터득한 지혜다. 우리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뜻은 협동하는 힘의 필요성을 아주 쉽게 전달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혼자, 득불로 하는 일이 일상화되다가 이 고비를 넘기고 나자 서서히 사무실에 출근하여 협업하는 이전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혼자서 하는 일의 성과보다 협력하고 같이하는 업무의 효율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사고 범위와 생각하는 영역은 서로 다르다. 나만이 갖는 특색이 있고 그 특징이 그 사람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징표도 되나 그 사고나 생각은 자기 범위와 정신영역에 한정된다. 이들 독창적 결과가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이고 융합되어야 각자의 고유한 색채를 떠나 융합된 더 큰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 삼원색, 즉 빨강(赤), 노랑(黃), 파랑(靑)은 각자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으나 이들이 서로 섞이면 주황색, 초록색, 보라색 등 삼원색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새로운 색조를 나타내어 원래의 색을 떠난 새로운 색을 창조한다. 오케스트라는 어떤가. 각각의 악기가 내는 다른 음이 조화되어 완전히 다른 완벽한 창조물을 발현한다. 각자 독창적인 특색을 가지고 있으나 서로 다른 특징을 같이 엮으면 둘의 다름을 바탕으로 한, 같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예를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고 있다. 협동은 단지 농사일에서만 나타나는 효용 가치는 아니다. 정신영역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는 것을 많이 보고 있다. 연구 단지를 집합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정신영역이 융합할 때 상승효과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농사나 동물 사육처럼 인간의 육체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도 협업하면 혼자 했던 일의 양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우리 조상은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두레, 울력 등에 이어져 왔고 이런 협업으로 힘든 농사일을 할 수 있었다. 
 
이제 농사일은 육체노동의 영역을 떠나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으나 정신영역의 업무는 사무실을 차려놓고 한 목적을 향하여 같이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모으고, 섞어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하고 독창적인 정신활동이다. 이제 우리 조상이 해왔던 두레, 울력, 품앗이 등 협업하는 정신을 지금의 정신영역의 업무에도 적용하는, 생각의 전환시기가 되었다. 여러 학술 분야에서는 서로의 생각과 개념을 섞고, 혼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학술발표, 각종 전문잡지 발행, 토론회 등은 자기의 생각을 표출하고 교환하여 다른 사람의 사고 영역에 영향을 주면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지금의 차원을 넘는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유도한다. 자기 것과 다른 생각의 융합은 각자의 노력의 결과로 성과가 달라진다. 나눔과 협동으로 새로움을 창조하고 이 결과를 인간사회로 되돌려 주자.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