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운전면허 반납하고, 승용차 인도하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14)

2025-06-25     식품저널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며칠 전 오래 정들었던 내 차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서운함, 아쉬움. 할 수 없이 떠밀려 보내는 자괴감 등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군대 가서 운전면허증을 받고 운전을 시작했으니 줄잡아 50년 넘게 자동차 운전을 하였다. 그 사이 일상 생활하는데 필수품이 되었고 내 활동 범위를 넓히고 편리하게 여러 일을 쉽게 하도록 군말 없이 나를 따르는 동반자가 되었다. 그사이 처음 구매했던 프레스토, 다음 엘란트라, 소나타 등으로 낡아진 차를 바꿔 타면서 국내 제조사 차만을 애용하였다. 

이 운전 기간에 큰 사고, 한가한 교차로에서 폐차할 정도의 큰 사고를 아내와 함께 경험하였으나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어 며칠 입원하고 퇴원했으니 큰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또 한 번의 경미한 인사사고로 고충을 겪기도 하였으나 운전 기간에 비교하여 사고 빈도는 높지 않았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다. 물론 의도하지 않았으나 과속, 신호 위반으로 범칙금을 낸 것은 몇 번 있었다.

은퇴 후 활동 범위가 좁아지니 차량 이용 빈도가 낮아지고 꼭 필요한 때 외에는 대중교통수단이 편리하여 자가용을 타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주차장에 세워놓는 시간이 길어졌고 운행을 하지 않으니 배터리가 스스로 방전되어 꼭 필요할 때 시동이 걸리지 않아 당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자주 사용하지도 않는 데 꼭 자가용이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가 가끔 들기도 하였으나 편리함을 느껴온 오랜 습관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이 현상을 지켜왔다. 

자가용을 운용하는 데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갖는다. 자동차 의무보험료, 최악의 경우를 고려한 폭넓은 추가보험, 자동차세, 그리고 엔진오일 등 차량 유지 관리비, 수시로 필요한 대소 수리비, 휘발윳값 등등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 또한 부담을 아니 느낄 수 없다.

내가 자가용 운전을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정적인 결심은 꽤 먼 거리, 지방에서 강연을 위하여 운전하고 돌아올 때 느낌이었다. 꽤 오랜 시간 운전하고 2시간 강연하였으니. 피곤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자꾸 눈이 침침하여 교통안내판이 흐려 보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하였고 몸의 상태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까운 거리는 문제가 없으나 조금 먼 거리는 몸이 신호를 보낸다. 더욱 요사이 원시인이나 사용한다는 스틱 운전을 하니 웬만큼 종아리가 튼튼하지 않은 한 계속되는 변속기어 변경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특히 시내나 밀리는 구간에서는 신경이 곤두선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하여 육체적 한계를 서서히 느끼고 있는데 3년마다 운전면허 갱신(노령 운전자에 한정)은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신체검사에서 시력은 한계로, 치매 검사도 간신히 통과하고 별도의 교육, 한 마디로 나이 먹은 사람은 면허받지 말고 면허 있다면 반납하라는 강력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이 먹은 늙은이들을 몰아내려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니 오히려 꼭 면허증을 갱신해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한다. 이 무슨 망발인가. 하여튼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면허증을 다시 발급받았고 내 지갑에 정중히 모시고 다녔다.

이 면허증을 반납해야겠다는 생각은 육체적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나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권유 외에 내가 실수하며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겠다는 나름의 생각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되돌릴 수 없는 사고가 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철들은 생각이 든다. 노인학을 한 전문가의 조언은 나이를 들어도 운전은 계속해야 뇌 기능이 활성화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뇌 기능은 운전과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사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 언론에서 꼭 앞에 붙는 수사가 70대 혹은 80대 운전자“A”씨라고 얘기한다. 무언중 나이를 많이 먹어 사고를 냈다는 뜻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 외의 연령대는 그런 수식어가 붙지 않는데 왜 70대, 80대는 꼭 앞에 나이를 붙여야 할까. 그 보도를 볼 때마다 마득치 않으나 방송의 속성상 알리고 싶은 뜻을 둘러 나타내는 것이라 치부하고 지나간다. 어떤 상황이 되었건 내가 오래 정들었던 자가용을 인도해주었고, 내일부터는 주차장에 서 있을 애차를 보살필 의무가 없어졌다. 오늘 아침도 습관적으로 내가 평소 주차했던 자리를 힐끔 쳐다보았으나 낯익은 차는 보이지 않네. 그렇다. 세상 모든 일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마무리하는 때를 맞는다. 내 자동차도 나와 같이했던 즐거웠던 추억을 남겨 주고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으니 자연의 이치를 따른 것이라 여기고 있다. 나 자신은 허전하고 상실감이 크나 가족들이 안심하는 모습에서 잘 결정했다고 생각하며, 회자하는 회자필리(會者必離)라, 무생물과도 어울리는 세상 이치를 받아들인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