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고통과 괴로움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13)

2025-06-18     식품저널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이 세상에 사는 것이 고해(苦海)라고 했던가. 종교적인 개념을 떠나서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고통과 괴로움이 항상 함께하고 있다고 느낀다. 조금 구분해서 생각해보면 고통과 괴로움은 그 뿌리가 완전히 다르다. 고통은 외부에서 오는 감정으로 육체에서 시작하여 감각으로 느끼는 과정이나 괴로움은 육체와는 상관없이 정신영역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이다. 즉 내재적 동기에 의해서 일어나는 심적 반응이다. 따라서 고통은 육체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느끼는 고통은 슬그머니 사그라진다.

손을 다쳤을 때 그 당시는 고통이 심하여 괴로우나 살균제나 연고를 바르고 처치를 하면 느꼈던 고통, 통증이 점점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을 잊게 된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은 고통과는 다르다. 고통(pain)은 육체가 관계된 물리적으로 피할 수 있는 유한의 상태이며 실존하는 실상이나 괴로움(suffering)은 허상이다. 마음속으로 느끼는 것이며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소멸될 수가 없다. 따라서 고통과 괴로움은 그 출생이 다르니 처치, 치료방법도 같을 수가 없다. 고통은 근원이 해결되면 스스로 물러나서 정상으로 돌아가고 그 고통을 느꼈던 본인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어버린다.

나도 피부가 늙어가니 발뒤꿈치가 자주 갈라져 걸을 때마다 심한 통증을 느낀다. 다른 조치 없이 견디다 보면 양말에 피가 묻는다. 견디지 못하고 저녁에 따뜻한 물에 발 담그고 한참 있다가 뒤꿈치에 붙어있는 각질을 제거하고(피부과 의사는 금기라고 경고했지만) 여기에 보습제를 바르고 양말을 신고 며칠 동안 조리를 하면 스스로 발꿈치 통증은 사라지고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걸을 때 불편했던 감정은 싹 사라지고 그냥 아프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겨버린다. 그렇다. 발뒤꿈치가 갈라지는 것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이니 이를 정상으로 돌려놓았으니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잊어버린다.

그러나 괴로움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 원인도 다양하고 그에 따른 대처 방법도 결코 쉽지는 않다. 괴로움의 근원을 생각해보면 상당 부분 자기만을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나온다는 것을 속마음에서 느낄 수 있다. 내 기준으로, 내 마음에 있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불만이, 더 나아가면 괴로움으로 발전한다. 괴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며 그 해소방법도 자기가 마음속을 뒤져 원인에 맞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내 생각이 모든 괴로움의 원천임을 알고 그 생각의 근원인 뿌리를 제거하면 내가 가진 지금의 괴로움은 소멸될 것이다. 이는 텅 빈 공간이나 깊은 산속에서 내 소리가 메아리를 일으켜 울림을 주는 원리로, 그 원인이 소멸되면 메아리도 힘을 잃게 된다. 괴로움을 일으킨 원천이 사라지면 마음속에 어찌 괴로움이 남아있으리오. 괴로움을 일으키는 마음속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내 의식으로 돌아가면 깨어있는 내 본심에 닿고 그 본심에서 맑은 내 의식을 되찾으면 어찌 지금 품고 있는 괴로움이 사그라지지 않겠는가.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바람을 물어보면 대답은 각기 다르겠지만, 표현이 다를 뿐 행복하고 안락한 생활, 그리고 괴로움이 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생물체인 우리 인간에게서 어찌 육체에서 오는 고통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에서 살아가고, 생활에서 오는 마음의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질 것인가. 고통과 괴로움은 생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필연적인 부수물이며 이들을 완전히 소멸시킨다는 것은 도를 깨치지 않은 한 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의지와 순수한 정신은 이들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육체가 주는 고통은 제어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정신영역의 괴로움은 근원이 이기심에서 오고. 그 이기심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오는 심리적 갈등이 괴로움으로 표출되는 것을 알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육체와 정신을 함께 갖고 있는 우리 인간은 삶이 계속되는 한 고통과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단지 그 느낌의 정도를 관리하고 그러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집착의 마음을 조금 완화시키는 나름의 수양이 필요하다. “카르페 디엠”,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생을 마감하면 고통, 괴로움도 함께 사그라질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처방전이다. 이생을 떠나는 망자에게 하는 말, “내생에서 편안하십시오”는 의미 깊은 말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