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땅에 그린 엄마 그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308)
한 친지가 가슴 뭉클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눈앞에 놓인 그 사진은 인도에 있는 한 고아원에서 엄마 모습을 땅바닥에 크게 그려놓고 나서 그 품 안에 자기가 쪼그려 안겨 잠들어 있는 모습이다. 가만히 상상하니 그 그림이 내 가슴속에 파고든다. 먹먹하다.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으면 그림 속에서라도 엄마의 품을 느끼고 싶었을까. 그 아이는 분명 어머니의 정을 느끼고 알았을 나이에 어떤 이유로 엄마와 이별하여 고아원에 들어 왔을 것이라 추측이 된다. 자기를 낳아서 키워주던 엄마는 가없는 따뜻한 품을 안고 어디로 가신 걸까. 어린아이의 마음에는 그 포근했던 엄마 품의 아쉬움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그림으로라도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다시 느껴 보려는 그 안타까운 심정, 그 마음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 세상에 태어난 어느 누가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없으리오. 그리고 어머니의 젖무덤에서 큰 사랑을 느끼면서 성장했고, 그 보살핌을 바탕으로 성인으로 성장하여 나름, 사회에 봉사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이어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 역할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기가 받은 사랑을 다시 후대에 연결시켜 주는 위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성인이 된 후에도 항상 한편에는 어린이로 어머니 품속의 따뜻하고 온화한 감정을 잊지 않고 어린애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음을 감추고 있다. 어느 때 어려움에 처하면 우리 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된, 그 세월을 잊어버리고 어머니를 부른다. 그 부름 자체가 큰 힘이 되어 다시 일어날 힘이 된다. 가끔 꿈에도 어머니 팔 베개가 느껴져 흠질, 지금을 본다.
그렇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어머니의 품을 느끼고 그 품속에서 평화로운 마음의 경지를 즐기곤 한다. 무한의 사랑, 일방만이 존재하는 관계를 맺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이 세상에 현실로 존재하지 않지만, 남아있는 그 사랑이 어려움에 처했던 많은 사람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의 가없는 힘이고, 무한 저력을 주는 바탕이다. 성장한 후에는 한동안 어미니 품속을 잊고 살다가 어느 날 문뜩 어머니가 생각나면 그 사랑스러운 눈빛에서 새로 힘을 얻는 경험을 한다. 무한 정신의 힘이 그 교신에 묻어있다. 그렇게 느꼈던 따뜻함의 꿈에서 깨어나면 허망하고 안타까움에 젖기도 하지만 지금을 있게 해준 그 큰 보살핌에 다시 감사하는 마음에 젖는다. 삶의 활력을 다시 느낀다.
지금 살아있는 형제, 자매간 든든한 이음의 끈이 되고, 그 끈으로 가족애를 더 굳게 하는 계기가 된다. 내 딸도 그 감정을 제 어머니에게서 받았고 다시 받은 사랑을 자기 자식에게 전달하는 선순환의 얽힘이 우리 인간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머니 사랑의 내림은, 시 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시대에나 절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고 느껴진다. 세대가 크게 변한 시대에 살지만, 어머니의 사랑의 강도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랑이 무조건적인 본능에서 나온 순수함으로 인류가 존재하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임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존재이다. 그 존재만으로 자식들이 곧게 설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쉼터가 되어준다. 우리 인류사에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이 없었다면 인간사회가 이렇게 큰 발전 할 수 있을까.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바탕이 되어 성장하게 되고 삶의 가치를 창출하면서 에너지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톨의 작디작은 씨앗이 물과 햇볕을 받아 거목이 되듯 그 씨앗을 잉태하고 거기에 물과 햇볕을 준 것은 어머니가 아니겠는가. 성장한 다음 내가 있는 현재는 그 과정을 잊히고 자기만의 힘이라고 여기는지 모르나 자기 자신을 다시 둘러 볼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면 뿌리부터로 자신이 온 지난 시간을 되돌려 볼 필요가 있다.
어머니의 사랑을 여러 여건으로 느끼지 못하고 견디기 어려운, 혼자라는 외로움과 슬픔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이겨내면서 살아온 사람들도 상당히 있다. 그분들이 자기의 어려움을 도약하는 에너지로 승화하여 사회에 크게 이바지한 경우가 많이 있다. 크고 넓은 어머니의 사랑이 바탕이 되지 못하였으나 자신의 더 큰 노력으로 결실을 보는 것을 보는 많은 사람은 경외의 마음으로 축하해 주기도 한다.
사진 속에 있는 인도 고아원의 어린 여자아이의 더 밝은 앞날이 펼쳐지고 우리 인간사회에는 어머니 품이 필요한 어린애가 홀로 떨어져 그 큰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비극이 더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늙음의 막바지에 들어섰을 때도 어머니 묘소를 찾아 어머니를 불러보는 그 순수한 심정을 간직하고 싶다. 그리움은 내 정신을 더욱 순수하게 하는 큰 힘이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산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