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닥친 어려움, “운명이다”로 한발 물러서기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307)
우리 삶에서 굴곡은 항상 우리 곁에 함께 와있다. 80억 명이 사는 이 지구, 개개인이 살아가면서 접하는 매 순간은 평생 즐거움과 어려움이 교차한다. 그러나 보통 힘들었던 일이 즐거웠던 일보다 더 많았다고 여겨진다. 그 고통이 즐거운 기억보다 더 심하기 때문이다. 세계 사성의 한 분으로 영적 지도자인 불타께서도 사바세계를 고해(苦海)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즐거움보다는 어려움이 더 많다는 간접증거일 것이다.
즐거움은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 그 수명이 길지 않으나 어려움과 고통은 그 아픔으로 오래 남는다. 우리가 절박하게 일상에서 느끼고 있는 삶의 어려움은 생로병사(生老病死)로 표현하고 있다. 즉. 태어나자마자 마주치는 삶, 울음으로 첫 신고를 하는데 앞으로 오는 날이 평탄하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젊음에서 활동하는 일, 활기찬 메일이 되나 늙음의 문턱을 넘으면 다가오는 허무함과 지난 세월에 대해 아쉬움이 마음에 남고 병들면 그 고통을 이겨내기 어렵다.
범인의 경우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 때의 그 두려움은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매일 접하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닥치는 것을 피하거나 못내 무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나 강하게, 그리고 꿋꿋이 마주하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대하는 여러 어려움은 내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 오는 후속 과정이다.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상의 과정으로 수용하는 여유도 가져 봤으면 한다. 그 고통과 괴로움은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산으로 기우는 듯 자연의 순리이고 그 순리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받아들임, 거부로 오는 갈등을 조금 비껴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하는 여유를 갖고 싶다. 거부하는 완력보다는 조용히 내 안으로 품는 방향 전환기술을 마음속으로 축적하는 슬기가 필요할 때가 되었다.
목사 친구의 얘기, 어려움이 닥치거나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올 때 이렇게 하라고 얘기한다.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그래 내 의지는 이제 내려놓고 그 결정을 절대자인 주님에게 돌렸으니 나는 그 결과를 기다리고 겸허히 주님의 결정을 따를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평화로운 수응 대책인가. 기독교나 천주교인의 경우이고 불교도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되뇌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에게 내 짐을 맡기는 염원이니 그 염원이 간절하다면 어찌 전능하신 부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을까. 내가 지금 짊어진 무거운 짐으로 어려움을 겪는데 그 짐을 훌쩍 떠넘겼으니 홀가분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초부터 하늘과 하느님에게 의지하였고 그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를 해 왔다. 일하다가 잘못되거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하늘의 뜻이다.”라고 하면서 내 의지의 전부를 절대자의 뜻으로 돌린다. 그렇다. 내 어깨에 있는 무거운 짐을 절대자에게 넘겨버렸으니 한결 홀가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짐 처리는 하느님의 뜻에 따르면 될 테니.
그렇게 “치부”한다고 얘기한다. 결과가 나온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응의 표시이다. 대학 1학년 때 철학 개론을 배우면서 교수님 말씀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그 이유를 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이건 운명이다”, 나에게 정해진 길로 나를 인도하는 것이다. 즉 “운명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그 어려움과 고통의 끈이 딱 끊긴다는 것이다. 크게 부하 걸린 전기가 퓨즈 절단으로 위험에서 벗어난다는 말씀이었다. 이런 생각을 나도 생활하면서 많이 경험하였다. 군대 생활에서 생사가 걸린 어려움 속에서도 이것이 내 “운명이다”라고 생각을 바꾸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곤 하였다. 이건 생각이 패배주의, 안일주의의 결과라고. 결코, 아니다. 마음 다스림에서 고도로 정제된 수단이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모든 일상의 일들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서 그 결과를 크게 차이 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근래 우리나라 사람의 자살률이 몇십 년 전보다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닌 생명을 스스로 끊는 자살은 그 한순간을 이겨내면 극단적인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삶에는 너무나 많은 갈림길이 있다. 길흉화복(吉凶禍福), 어느 것 하나 결정된 것이 있는가. 단 내가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운명이다”, “하늘의 뜻이다.”하고 어려울 때 최후의 결정을 절대자에게 미루어 극한상황을 벗어나는 여유를 갖는 것은 어떨까.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