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매가격유지행위’, 일률적 금지의 정당성과 문제점에 대해
식품안전과 바른 대응法 104.
법무법인(유한) 바른
재판매가격유지행위 일률적 금지를 관철시킨다면, 결국 온라인 시장에서 염가로 판매하는 플랫폼만이 살아남고, 오프라인 매장이나 별도의 판매조직(총판, 대리점 등), 판매법인은 생존할 확률 거의 없어
안녕하세요. 법무법인(유) 바른 식품의약팀의 공정거래 전문가 정양훈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식품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게 제품을 공급하면서 그 유통업체의 소비자 판매가격을 지정하는 것은 공정거래법령에 의해 금지됩니다. 이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로서 금지되는 것인데, 이와 관련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의 주요 조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정거래법 제2조 제20호는 “사업자가 상품 또는 용역을 거래할 때 거래상대방인 사업자 또는 그 다음 거래단계별 사업자에 대하여 거래가격을 정하여 그 가격대로 판매 또는 제공할 것을 강제하거나 그 가격대로 판매 또는 제공하도록 그 밖의 구속조건을 붙여 거래하는 행위”를 “재판매가격유지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법 제46조 본문은 “사업자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여 원칙적 금지 입장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령의 조항에 따라, 식품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게 소비자 판매가격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금지되고, 또한 유통업체와의 상호 합의에 의해 소비자 판매가격을 정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일까요? 법령에 대한 해석론을 떠나 어떠한 내용의 법령이 바람직한지 입법론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생각해 볼 점이 많이 있습니다.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거라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유통단계에서는 유통업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제조업체가 미리 유통단계에서의 가격을 정하는 것은 유통업자의 의사를 억압하는 것이고, 제조업체가 유통차익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재판매가격유지행위는 궁극적으로 소비자 판매가격을 인상하여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소지도 있습니다.
그밖에 유식한 말로, 재판매가격유지행위는 브랜드 내 경쟁을 저해합니다. 경쟁에는 브랜드 간 경쟁 뿐만 아니라 브랜드 내 경쟁도 포함되는데, 여러 브랜드가 수평적으로 담합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처럼, 하나의 브랜드 내에서 수직적으로 담합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유통실무를 접하다보면, 위와 같은 설명이 꼭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허용된다거나 허용되는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통단계에서 단가를 협의하는 것은 곧 판매이익을 유통단계에 유보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판매이익을 왜 유보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유통 단계에서 특별한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유통단계에서 판매이익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사례를 가정해봅니다. 대리점 A는 제품 판매를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임차하고, 비싼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설치하며, 판매사원도 고용하는 등 판매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대리점 B는 대리점 A의 노력에 무임승차하여 제품을 모두 온라인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이러한 영업방식이 계속된다면 대리점 A는 투자비용을 회수하지 못해 곧 문을 닫습니다. 대리점 B는 일정 기간 동안에는 절찬리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겠지만, 유통 단계에서 판촉활동에 의한 투자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해당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가 저하되어 결과적으로 판매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방문판매, 다단계판매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후원수당이란 판매실적에 기반하여 다단계판매업자가 판매원에게 지급하는 경제적 이익을 말하는데, 이는 곧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재원으로 합니다.
그런데 만약 판매원이 제품을 온라인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경우 후원수당의 재원이 될만한 이익은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후원수당을 지급할 수 없음은 물론 판매조직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재판매가격유지행위는 가격경쟁 대신 품질·서비스 경쟁을 촉진하며, 그 결과 소비자후생에도 기여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일률적 금지를 관철시킨다면 결국 온라인 시장에서 염가로 판매하는 플랫폼만이 살아남고, 오프라인 매장이나 별도의 판매조직(총판, 대리점 등)이나 판매법인은 생존할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결론적으로, ① 명품 등 고급 이미지를 보호하고자 하는 경우, ② 제품 판매 과정에서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경우, ③ 인지도가 낮은 신제품이 조기에 시장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경우에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필요하고, 실제로 그러한 사안에서 적법성, 부당성 여부를 다투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과거 공정거래법은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하였고, 조항의 문구상 예외적으로라도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재판매가격유지행위는 이른바 당연위법 법리가 적용되는 행위로서 부당성 여부를 심사할 필요도 없이 위법하다는 것이 종래의 다수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09두9543 판결은 이른바 한미약품 사건에서 “시장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그 행위가 관련 상품시장에서의 상표간 경쟁을 촉진하여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증대하는 등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여 예외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그 후 개정 공정거래법 제46조 단서 제1호는 “효율성 증대로 인한 소비자후생 증대효과가 경쟁제한으로 인한 폐해보다 큰 경우 등”을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예외적 정당화 사유로 규정하였습니다.
재판매가격유지행위는 한 때 절대로 금지되는 매우 나쁜 행위로 여겨졌으나, 최근 들어서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는 견해도 있는 흥미로운 개념입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유통구조를 설계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