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택배에서 얻은 교훈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303)
얼마 전 택배 하나를 받고 겪은 소중한 쓴 경험을 하였다. 내가 지키던 자존심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잠간의 허술한 처신이 마음에 남는 상처가 되었다. 내 민낯이 고스란히 벗겨졌으니.
우리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택배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물건을 보내고 받는 일은 한동안 우체국이나 철도화물이 맡았고, 그때는 물건을 보내고 받는 일이 그렇게 빈번하지도 않았다. 농사 짓는 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자식에게 가을 추수가 끝나면 벼를 도정하여 햅쌀을 보내주려면 적당량을 포장하여 철도역에 가서 화물로 붙이고 자식들은 지정된 역에서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큰 역에는 지게꾼이 있었고 이들은 찾은 짐을 지게에 지고 가는 곳까지 운반해주었다. 참으로 여유가 있었고 급히 서둘러야 마음대로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집에서 물건을 부치고 희망하는 지역의 목적지에서 편안히 배달된 물건을 받고 있다. 이제 택배가 큰 사업으로 부상되었고 참여하는 회사도 꽤 많아졌다. 사업이 된다는 얘기다.
나도 필요에 따라 택배 신세를 진다. 특히 명절 때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선물하거나 고마움을 표시할 분에게 작은 선물을 할 때도 손쉽게 택배를 이용한다. 그만큼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특히 온라인 주문이 많아지면서 앞으로 이 사업은 더욱 번창할 것이다. 외국인들이 처음 한국에 와서 아파트 통로에 쌓여 있는 택배물건과 그 물건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데 정확히 받을 사람에게 전달되는 모습에 놀란다고 한다. 남에게 온 택배물건을 타인이 불법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반적인 현상에서 내가 당한 경우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예외라 여겨진다. 하루는 내 오피스텔 문 앞에 택배물건이 도착해 있다. 친지나 제자들이 가끔 택배를 보내고 같이 일하고 있는 분들이 필요에 따라 보내는 택배가 있으니 크게 의심하지 않고 사무실로 들고 와 개봉하면서 보낸 사람 이름과 전화번호를 확인했으나 이름은 가운데 글씨가 생략되어있고 전화번호는 확인이 불가능하였다. 여하튼 내 사무실 앞에 배달이 되었으니 나에게 온 것은 확실하다고 보고 개봉하였다. 내용물은 냉장품으로 샐러드가 5통이 들어있었다. 냉장하지 않으면 상할 채소류와 햄, 닭고기 살이 곁들여 있다. 금방 냉장고에 보관하였다. 택배로 받은 그다음 날 잘 사용하지 않는 FAX 전화로 샐러드 택배 받았냐는 물음 그리고 잘못 배달되었으니 반송해달란다. 사실대로 3개는 소비했고 2개가 남아있다니 사무실 밖에 내놓아 달라는 부탁, 어디인가를 확인할 여유도 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이틀 후, 목소리로 느끼기에 한 젊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택배를 불법 채취하여 사용했으니 소비한 3개의 값을 내라는 얘기다. 3개 값을 송금하지 않으면 불법 채취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순간 욱하면서 거친 말이 나왔다. 내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남의 물건 훔친 적 없고 불법 채취한 것도 없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니, 그 젊은이는 아주 차분한 말소리로 나이는 상관없고 남의 물건을 불법으로 가져갔으니 그에 대한 처벌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음성, 너무나 당황하여 대응하기 어려웠다. 어찌 내가 먼저 화를 내었는고. 그리고 화 돋우는 말에 화로 대응을 했으니. 이 나이 헛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글쎄 내 사무실 앞에 잘못 배달한 사람이 일차적인 책임이고 그 택배를 잘 확인하지 못한 나에게 일부 책임이 있겠으나 기록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 어찌할까. 이 모든 것을 미루어 놓고도 화를 낸 내가 결국은 책임 전부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화를 내면 논리적으로 따져 시시비비를 가릴 여유를 잃게 된다.
그렇다. 모든 일은 차분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화내고 성질 급한 사람을 이기게 되어있다. 그렇게 수양이 필요하다고 배웠어도 내 앞에 당한 일에서는 그 논리가 발동되지 않고 감정이 앞서버리니, 이 어찌 나이 먹은 사람의 행동이란 말인가.
내가 소비한 3통의 값을 유쾌하지 못한 마음으로 송금해주면서 다시 나 자신에게 갖춰진 인격의 수준을 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논어에는 아홉 가지 바른 생각 중 분사난(忿思難)이 있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살아야지 그대로 들어내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화를 먼저 내서 결코 이득이 아니라는 경구다. 인내는 분노의 처방전이라는 터기 속담을 다시 뇌면서 올바르게 화를 내는 것은 화를 참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에 위안을 받는다.
살다 보면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는 있어야 하나 사소한 일에 화를 먼저 내어 손해를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교훈을 얻은 택배 사고였다. 계속 배워가는 삶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