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아침 출근길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300)

2025-03-19     식품저널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어제와 같은 시간, 아침에 눈을 뜬다. 5시 반이다. 누운 채로 물고기 헤엄 자세의 허리운동이 이제 습관이 되었고, 5분 정도의 몸 풀림 등 자는 뇌를 깨우는 데도 도움이 되나 보다. 이어서 아내가 준비해놓은 먹을거리, 누룽지로 만들어 놓은 오곡밥을 냄비에 넣고 끓이면서 달걀 하나, 끓어 넘치는 것은 꽤 조심해야 한다.

변비 예방용 토마토 등 5가지 채소 혼합 주스, 식이섬유 그리고 여기에 깎아놓은 계절과일들, 복숭아, 사과, 자두를 내놓는다. 여기에 편안한 대변을 위한 껍질 벗긴 참외(씨까지 먹는다), 우유와 보리차를 데우고 익혀 준비된 고구마를 더한다. 내가 강조하는 기능성 미생물이 가득한, 떠먹는 요구르트에 호두를 얹어 놓으면 아침식사 준비 완료. 이상적인 아침식사 조합.

어제 일어난 일들을 알리는 아침 뉴스를 TV를 통하여 듣고, 아침식사를 개시하기 전, 팔 운동ㆍ허리 운동ㆍ뜀뛰기ㆍ자전거 타기 등 이런 운동을 하는 동안 끓는 누룽지탕은 준비가 되고, 우유와 따뜻한 물은 적당한 온도가 된다. 아침에 간단한 운동이 끝나면, 그릇에 담긴 음식을 내 위 안으로 이동시키는 과정, 이 사이 음식의 맛을 즐기면서 이렇게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까지 수고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하는 생각을 마음으로 전한다. 

아침의 정해진 일과로 배변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고, 면도하고 간단히 샤워하면 끝이다. 그러나 면도 상처는 스킨으로 아물게 해야지. 본격 출근 준비다. 아내가 준비해준 외출복은 상쾌하다. 한여름 동안은 몸의 땀이 미쳐 가시지 않지만, 이 또한 내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증좌가 아니겠는가. 땀이 나는 행복을 행여 놓칠세라 이것도 감사와 행복 항목에 꼭 넣는다.

내 사무실까지 출근은 걸어서 25~30분, 항상 걷는 길이라 눈에 익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매일 주위의 환경은 눈 밝은 사람에게만 그 변화를 알려준다. 밤새 우리가 사는 집을 지켜주신 경비원에게도 감사 겸 가벼운 농담을 건네고, 바로 계단 밑에 내가 심어놓은 봉선화에 눈 맞춤을 한다. 요 녀석이 어찌 꽃을 피우지 않는가를 묻는데, 그저 잎사귀만 흔드네. 답으로 대신하려는 눈치이다.

건너 동 앞에 있는 무궁화는 무리 지어 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매일 아침 일찍 많은 꽃송이를 활짝 열고 나를 반긴다. 은은한 흰색에 붉은 꽃잎 색깔, 꽃 안에 암술은 탐스럽게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조금 지나면 접시꽃 잔치, 심지 않아도 매년 씨가 떨어져 자기가 있음을 알린다. 흰색ㆍ분홍색ㆍ붉은색, 고루고루 자태를 뽐낸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면 나만 손해지. 건널목은 신호가 떨어지는 대로 골라서 건너고, 가는 길에 출근 시간이 맞는 낯익은 분들을 자주 만난다. 인사하고 싶으나 상대가 어찌 생각할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반갑게 인사하는 구면이 된 분이 몇 명이 있다. 중개업을 하시는 분, 항상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내가 출퇴근하는 것을 자주 본다고 얘기한다. 조금 지나면 반찬 가게 사장님, 7시도 안 됐는데 준비된 반찬을 차에 싣는다. 인사 후 동향이라 뵐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가벼운 격려의 말을 전한다.

카센터를 지나면서 인사 나누는 사장님이 가꿔놓은 작은 정원, 갖가지 꽃들이 앙증스럽게 피어있다. 패랭이꽃, 나팔꽃, 분꽃, 만수국, 거기에 내가 씨를 받아 보관하는 몇 가지 색깔의 봉선화, 오동나무의 넓은 잎, 백일홍, 담장에 걸친 오렌지색 능소화, 이들을 감상하다 보면 인사하는 분이 또 있다.

건물 몇 동을 맡아 청소하는 분,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그의 전 직장이 내가 잘 아는 곳이라 친분 있는 분의 소식도 같이 나눈다. 또한, 자기 자동차 관리를 항상 깨끗하게 하시는 꽤 연세를 드신 분을 빼놓을 수 있겠는가. 항상 자동차 닦는 것을 본다. 수고하신다고 인사하고 서로 웃으며 아침을 맞는다. 

지나다 보면 간판의 글씨도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문구가 많다. '봉선화 손톱'이라니, 추억을 불러일으키니 어찌 가지 않고 배기겠는가. Lasting~nail, take your time, 一流, 3개 국어가 혼용된 골목길 상가. 맥줏집은 분위기를 한껏 잡았다. 요사이 간판이 영어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여겨진다.

좁은 틈새에 뿌리내린 머루나무는 한참 자그마한 열매가 익어가고, 밖으로 뻗친 가지를 다칠까봐 안으로 밀어 넣어준다. 이 정도 식물과 교감하다 보면 내 사무실 근방에 도착한다. 항상 눈여겨보는 식당, '소풍'이라 이름 붙인 김밥집, 주인아주머니가 앞치마를 두르고 같은 시간에 열심히 김밥을 만든다. 신선한 음식준비로 아침 손님을 맞는 모습이 정답다. 어쩌다 그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살며시 걱정된다. 그리고 더 걷다 보면 사무실 앞, 편의점 주인과 몇 년째 친한 이웃이 되었고, 내가 선택한 신문을 공급하는 공급처이다. 이제 부인과 아들과도 친한 사이가 되었다.

우리 공동사무실 뜰에 심어놓은 분꽃, 옥잠화는 어찌 사랑스럽지 않은가. 친숙한 건물 경비원, 너무나 상냥하다. 마침내 도착한, 정 가득 든 내 아담한 사무실, 들어서면서 먼저 눈 익은 책들에 반가운 인사하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 오늘 일과가 시작된다. 7시 30분이다. 그리고 믹스커피가 준비되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소소하고 평범한 행복을 안겨주는 이 시간을 충실히 활용하겠다고 다짐한다. 내 인생에 딱 한 번 오는 이 하루를 이렇게 허락하여 생명을 준 절대자에게 감사하면서.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