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다름과 틀림
틀림을 다름으로 받아들여 조화를 이루는 평안한 세상이 되었으면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96)
다름과 틀림,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 말이 품은 뜻은 크게 다르다. 평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어느 때는 매 순간, 상대의 생각이나 행동이 내 생각으로는 맞고 혹은 틀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름과 틀림을 마주하면서 선택해야 할 경우가 많다. 이때 다름과 틀림, 즉 영어로 보면 다름은 ‘difference’, 틀림은 ‘wrong’ or ‘incorrect’쯤 되지 않을까. 비슷한 개념인 것 같지만 근본이 다르다. 다름은 서로의 차이를 그 뜻에 안고 있다. 이것과 저것이 다르다고 얘기한다. 즉 장미꽃과 국화꽃은 다르다고 하지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참새와 제비는 다르고 같은 조류라고 한다.
우리는 여러 많은 시험을 보면서 살고 있다. 시험 문제는 정확히 정답이 정해져 있고, 그 정답과 맞지 않을 때 그 답은 틀렸다고 얘기한다. 우리 개념에서 받아들이는 다름과 틀림은 그 뜻에서 크게 차이 난다. 우리 생활이나 사고에서 이 다름을 왜곡하여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토론할 때 자기 주장에 거슬리거나 반대하는 경우 그 상황을 받아들일 때 다름인가 틀림인가를 생각해보면 두 개념의 차이를 아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소인배(小人輩)는 자기 주장에 다른 얘기를 하면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받아들여 그 말을 한 상대를 적으로 돌린다. 그러나 대인(大人)은 같지 않음을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주장에 덧붙이거나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를 검토하면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검토해보는 여유를 갖는다. 매일 접하는 우리 일상에서 이 두 개념은 항상 대립하고 우리 판단을 기다린다. 이 지구상 50억 명이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겉모습이 꼭 같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가. 없다. 어느 생명체도 외양이 똑같을 때는 없다. 이런 겉모습과 함께 속마음, 생각하는 것도 결코 같거나 똑같을 수는 없다. 같지 않은 것이 정상이고 다름이 자연의 섭리라고 여겨진다.
독재국가와 민주국가의 차이점은 독재국가의 통치자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를 지향하고, 같지 않음을 적대시하여 적으로 돌려버리는 형태를 보인다. 독일의 히틀러는 주민을 같은 잣대로 모두를 획일화하여 전쟁에 몰입하도록 했으며, 국민 모두는 같은 기준으로 같은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독재정권의 특징이다.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북한 정권이라고 여긴다. 수령 하나를 신으로 모시고 그 모심에 조금도 차이가 없어야 하며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다르게, 혹은 틀리게 행동하며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니. 개인의 행동과 사고는 존재하지 않고 한 독재자만 있다.
민주주의는 어떤가. 개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자의에 의해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각종 법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생각이나 표현의 자유를, 국가를 향한 이적행위가 아니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속성인 다름을 최대한 인정하고 그 개념을 북돋아 줌으로써 독창성과 고유성을 갖도록 국가는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해 줌으로써 서로 경쟁을 통하여 더 발전하고 또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요사이 정치계 지도자들을 보면 다름과 틀림을 잘 구별하지 못하지 않나 여기는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나의 말과 행동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것은 틀리다고 여기는 풍조가 인간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고 본성을 왜곡하는, 참으로 우려스러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원래 태생적으로 다르게 태어났는데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 다름을 틀림으로 몰아버리는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작태가 아닌가 한다.
우리 근세사, 조선 역사를 보면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개념을 동화시키며 노력한 군주가 있었을 때는 번성하였고, 다름을 틀림으로 몰아버리면 폭군이나 우둔했던 군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생각은 개인의 경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폭넓게 품어 안는 지도자는 자기 주위에 지당대신이나 yes man 대신 건설적인 다름을 스스럼없이 밝힐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이들 의견을 조화시켜 국정에도 반영한다. 이런 지도자를 우리는 기억하고 거인으로 평가한다.
논어에 나오는 화이부동(和而不同), 동이불화(同而不和)라는 기원전 성현의 심오한 말씀이 지금 이 시대에 가슴 깊이 와 닿고 있다. 남과 조화를 이루어 주어진 일을 헤쳐나갈 것인가, 헛되게 같음을 내세우나 화합되지 못하는 소인배(小人輩)로 남을 것인가는 자기 마음 갖기에 달렸다. 틀림을 다름으로 받아들여 조화를 이루는 평안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