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공전, 헌법서 정한 ‘포괄위임금지원칙’ 시비를 피하려면...

식품안전과 바른 대응法 98. 식품공전과 포괄위임금지원칙

2025-01-22     식품저널
김미연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안녕하세요. 법무법인(유한) 바른 식품의약팀 김미연 변호사입니다. 식품법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느끼는 어려움 중 하나는 위임규정이 너무나도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법률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식품법의 경우에는 규제 내용이 시행령, 시행규칙, 식약처 고시에 흩어져 있고, 상위규정에서 하위규정으로 내용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매우 번거롭고 복잡하며, 어떤 내용이 어디에 규정되어 있는지 찾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헌법에는 ‘포괄위임금지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헌법 제75조는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헌법 제95조는 ‘국무총리 또는 행정각부의 장은 소관사무에 관하여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할 수 있다.’가 규정하여, 위임입법의 근거와 그 범위 및 한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위임입법의 요건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위임의 불가피성과 예측가능성입니다.

위임입법의 형식과 관련하여,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할 때 법규명령뿐만 아니라 식약처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에도 위임이 가능한지 문제됩니다. 헌법재판소는, 현대사회에서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국회의 입법만으로는 급증하는 입법수요에 대응할 수 없으므로, 국회가 입법으로 행정기관에게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여 위임한 사항에 관하여는 당해 행정기관이 법 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이때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 행정규칙에도 위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ㆍ개정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수 있는 내용은 전문적ㆍ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위임의 한계로서 헌법상 제시되고 있는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라 함은 법률이 이미 하위법규에 규정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사항이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도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당해 법률 그 자체로부터 하위법규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측가능성의 유무는 관련 법조항 전체를 유기적ㆍ체계적으로 종합 판단하여야 하고, 각 대상법률의 성질에 따라 구체적ㆍ개별적으로 검토하여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식품접객영업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영업자’는 ‘영업의 위생관리와 질서유지, 국민의 보건위생 증진을 위하여 총리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한 구 식품위생법 제44조 제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식품 관련 영업은 식품산업의 발전 및 관련 정책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수범자인 영업자의 범위, 영업형태, 영업자의 준수사항을 하위법령에 위임할 필요성은 인정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심판대상조항은 식품접객업자를 제외한 어떠한 영업자가 하위법령에서 수범자로 규정될 것인지에 대하여 아무런 기준을 정하고 있지 않고, 법률에서 나열하고 있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입법목적만으로는 준수사항의 내용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여, 심판대상조항이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반되어 위헌이라고 결정하였습니다(2014헌가6). 위헌 여부가 문제되자 위 조항은 준수사항의 개괄적인 내용을 각 호로 구체화하여 규정하는 형식으로 개정되었고, 이후 법원은 위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제청심판을 기각한 바 있습니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식약처장이 국민 건강을 보호ㆍ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하면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식품의 제조ㆍ사용 방법에 관한 기준을 정하여 고시하도록 한 식품위생법 제7조 제1항, 기준과 규격에 맞지 않는 식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제조ㆍ사용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 동조 제4항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하였습니다(2017헌바449, 2017헌바222). 식품의 제조방법기준을 정하는 작업에는 전문적ㆍ기술적 지식이 요구되고 식품산업의 발전에 따른 탄력적ㆍ기술적 대응과 규율이 필요하므로 심판대상조항이 이를 식약처 고시에 위임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식품으로 인하여 생기는 위생상의 위해 방지, 식품영양의 질적 향상 도모, 식품에 관한 올바른 정보 제공으로 국민보건의 향상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 식품 제조 등의 구체적 내용을 종합해보면, 심판대상조항의 위임에 따라 식약처장이 규율할 내용은 국민보건 향상의 관점에서 식품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공통적인 제조방법 및 식품별 특성을 고려한 제조방법에 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기준이 될 것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판단은 위헌소원을 신청한 당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감안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적인 고려가 다분히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식품의 기준 및 규격을 정하는 것을 식약처 고시에 위임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그렇다고 해도 「식품의 기준 및 규격」(소위 ‘식품공전’)은 식품일반에 대한 공통기준 및 규격, 식품유형별 기준 및 규격, 식품접객업소의 조리식품 등에 대한 기준 및 규격, 검체의 채취 및 취급방법, 시험법까지 망라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 ‘식품유형’의 분류는 식품공전의 주요한 내용으로 식품의 기준 및 규격도 식품유형별로 정해져 있으나, 식품유형은 법률에는 없는 개념이고 그 정의는 식품공전 총칙에 처음 등장합니다. 법률에는 식품유형의 분류를 고시에서 정하도록 위임하는 근거도 없고 분류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도 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법률에는 고시에서 시험법을 정할 것을 위임한 수권조항도 없습니다.

식품위생법 제7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기준 및 규격의 내용은 ‘제조ㆍ가공ㆍ사용ㆍ조리ㆍ보존 방법에 관한 기준’, ‘성분에 관한 규격’ 단 두 항목뿐인데, 식품공전은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방대합니다. 비록 과거에 헌법재판소에서 위 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하였지만, 위헌결정을 받은 구 식품위생법 제44조 제1항과 비교하더라도, 이러한 위임의 형태가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합니다. 최소한 식품공전에서 정할 내용의 개요는 법률에서 규정해야 포괄위임입법인지 여부에 대한 시비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