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직장동료들의 집단 회고록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79)
누구나 지나온 자취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이 있으며
또 내일을 맞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나의 흔적을 정리하고
더욱 알찬 내일을 맞기 위한 다짐으로
집단 회고록이 모두에게 밝은 지침이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같은 직장에서 꽤 오랜 기간 일했던 동료들, 이제 70을 넘어 일부는 80 고개를 넘으면서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지키고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가까운 명소를 찾아 산책하고 밀린 얘기 나누고 맛집을 찾아 점심을 한다. 은퇴 후 하루쯤은 자신에게 너그러운 날이 되는데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살아오면서 한 직장에서 10년을 훨씬 넘는 시간을 같은 방, 이웃에서 지낸 인연은 아마도 전생이 있다면 질긴 고리가 이어진 결과라고 여겨진다. 더욱이 모두가 연구실에서 일했고 어떨 땐 같은 과제를 갖고 씨름하며 때에 따라서는 밤샘을 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경험을 같이하였다. 취미가 같은 운동을 하고 일과가 끝나고 나면 삼삼오오 맞춰 단골로 다니던 술집에 들러 막걸리며 소주, 그리고 음식점에 따라서는 백 알까지 청탁 불문, 먹어대고 꽤 늦은 시간 귀가하였다. 마음이 맞으면 가까이 있는 친구의 집을 불시에 찾아가 술 내놓으라고 소리쳤으니 이들 취객을 맞는 주부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 때 그렇게 실례를 범한 분들을 지금 만나면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고 반가운 마음이 든다. 물론 상대의 마음을 깊이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모임을 하기 시작한 지 10여 년, 자리를 함께하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뜻이 모였다.
이제 지나온 긴 세월보다 앞으로 남은 생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확실한 것은 총 기간에서 중간을 훨씬 넘어섰다는 것은 확실하다. 모이면 건강 얘기가 우선하는 것을 보면 그렇구나 하고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요즈음이다. 어느 날 이제 지난 일들을 각자 한 번쯤 생각해 보고 남아있는 시간을 어찌 활용할 것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 보면서 나를 추스르는 기회를 가지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지금 만나고 있는 8명의 집단 회고록이라고 할까. 회고록의 형식을 따르지만, 탄생과 성장 과정, 수학의 길, 그리고 연구 생활에서도 각자 동일한 여건이 하나도 없을 테니 조금은 흥미로운 회상이 될 것이고 지나온 내 발자취를 다시 점점 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공감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에 묻히기보다는 그 지난날의 경험을 거울삼아 앞으로 올 날을 계획해 보자는 것에 더 비중을 두기로 하였다. 내 과거를 들추는 것은 비밀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쑥스러운 생각도 드나 어쩌나, 있었고 경험했던 내 발자취는 영원히 그대로이고 저 마음 밑바닥에 앙금처럼 굳어져 있던 현상을 녹아내어 내 생각의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우주에서 결코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 내가 경험하고 살아온 자취는 어느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자연의 모든 것이 독존(獨存)하듯 나라고 하는 창조물도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이 자서전을 쓰면서 느끼고 싶은 심정도 있다.
부처님이 득도 후 처음 말씀하셨다고 하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정말 나이 먹어가면서 자신에게 물어보고 답을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외침이 되지 않았는가. 길가 외롭게 되어있는 꽃 한 송이도 향과 아름다운 색으로 그 존재 가치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데 지구상 최고의 영장인 인간에게서야 그 가치를 다시 논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지금쯤 이 집단 회고록을 쓰기 위하여 머리를 싸매고 있을 동료들을 생각하니 흐뭇하다. 연구보고서나 학술논문은 많이 써봤지만 내 얘기를 쓰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진지하고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회고록은 자주 접하고 그 내용에 공감하거나 그렇지 않게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삶의 여정 상당 부분은 같이한 동료들의 집단 회고록은 그렇게 쉽게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쓰일 각자의 인생 역사는 자기의 일을 쓴 것이긴 하지만 깊이 가려져 있는 자기 가족, 성장한 자식들에게 남편, 아버지의 인생을 펼쳐 보이는 기회가 되어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아끼며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데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여긴다. 누구나 지나온 자취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이 있으며 또 내일을 맞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나의 흔적을 정리하고 더욱 알찬 내일을 맞기 위한 다짐으로 이 집단 회고록이 모두에게 밝은 지침이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