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단순함을 지향하며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77)

2024-09-11     식품저널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단순함은 복잡의 반대개념으로 필요의 진수를 뽑아 그 속에서 만족하면서 사는 삶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단조로움은 목적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삶의 연속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사는 일상을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매일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매일 접하는 일과로 큰 변화는 없지만 그렇다고 매일 매일 꼭 닮은 하루는 없다. 먹는 것부터 소소한 매일의 일이 어제와 똑 같게 지나가지는 않는다. 무엇인가 다르고 어제 하지 않았던 일을 오늘 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도 하나 어떤 때는 부담과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일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이 밀려오면 생각이 복잡하고 어수선하나 불안하고 착착함에 삐지는 때도 있다. 경제적인 이유, 가족 간의 여러 일들, 접촉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 삶이 있는 한 이런 일들은 오늘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내일, 아니 내 생명이 붙어있고 생활을 하는 한 매일매일 다가오겠지, 
 
이런 상황에서 가끔은 내가 성장하였고 내 마음바탕에 깔려 나를 지탱하고 있는 시골생활을 생각하곤 한다. 물론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고 내가 전적으로 책임질 일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생활자체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다고 느끼고 있다. 배가 고프면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에 앉으면 그 부족함이 해결되었고 여름날 더우면 가까이 있는 냇가에 첨벙 뛰어들면 더위가 일거에 해결되었고, 겨울은 솜바지에 벙거지로 무장하면 동장군도 피해갔다. 
 
학교생활에서 얻은 지식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누구도 채근하지 않으면서 격려해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내가 이룬 모든 것을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단순함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단순함 속에 살아가다가 어느 날 복잡함 속에 빠져드는 나를 보면서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주위에는 그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허접스런 것이 얼마나 많은가. 집안이 들어서면 일 년에 한 번도 쓰지 않는, 어느 땐가 꼭 필요하여 사들어 놓았던 물건, 그들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왜 나를 이렇게 홀대하고 있느냐고. 그래도 다시 눈길 한번 주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내 옆 책상 서랍을 열면 온갖 잡동사니가 즐비하다. 대부분 필요 때문에 넣어놓은 것이 아니라 어느 때, 어느 인연으로 내 서랍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용도대로 쓰여질 날은 언제일까. 어느 날 전체를 정리할 순간이 오면 쓰레기통에 한꺼번에 쏟아 넣어질 운명이 환히 보인다. 그러면서도 선뜻 처분하지 못하고 다시 서랍을 닫는다. 한 방법으로 이사를 가보려고 한다. 내가 얼마나 필요 없는 것을 끼고 살면서 그것들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살았는가를 알기 위해서.
 
이런 심정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몇 번씩 읽는다. 무소유,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물질을 넘어 정신 영역까지를 말씀하시는 것인가. 종교인, 특히 스님의 생활에서는 가능하지만, 이 사회,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중생의 생활에서는 스님의 생활같이 단순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가족이 있고 자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수십 가지의 소소한 물건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내 머리를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코, 내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다. 
 
그러나 복잡의 강도를 훨씬 낮출 수 있는 여백이 있다고 여겨진다. 어느 대가족이 사는 집에서도 깔끔히 집안이 정돈되어 있고 꼭 필요한 것 외에 잡동사니는 별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경험하였다. 집주인의 마음속 원칙이 외양으로 나타나 깔끔하게 정돈된 마음속을 보는 것 같아 존경의 마음이 인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니 그 생활을 부러워하고 닮고 싶은 심정이나 천성이 그렇지 않다면 어찌 나를 그렇게 몰아대어 또 다른 짐을 짊어지게 할 것인가. 천성으로 둘러대어 그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데 그래도 단순함과 정돈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결코 버린 적이 없다. 하긴 너무 단순하게 살다 보면 삶의 다양성이 훼손될까 걱정스러운데 단순함과 단조로움은 구분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단순함은 복잡의 반대개념으로 필요의 진수를 뽑아 그 속에서 만족하면서 사는 삶이라 여겨진다. 단순함에서는 생각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러나 단조로움은 목적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삶의 연속이란 생각이 든다. 늙어가면서 삶의 목표가 흐려질 때 단조로움이 밀려오고 그것이 외로운 감정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단순함의 절제와 다르게 단조로움은 지향 방향을 잃은, 가야 할 항구가 없는 배와 같은 처지가 아닐까. 단순함을 지향하면서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잡고 복잡을 피하는 생활을 하고 싶은데 한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단순함이 내 생활철학으로 베어드는 것은 쉽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렇다고 결코 단조로운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역동적이며 움직이는 삶, 복잡함을 단순하게 만드는 지혜, 육체를 밀치고 정신 영역에서만이라도 내 생활지표로 삼고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