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양곡 가공용쌀, 현행 제도는 여러 품종 혼입…고품질 쌀가공식품 생산 어려워

[기획] 정부양곡 가공용쌀 공급 이대로 좋은가(3 - 끝) 쌀가공전문가 의견

2024-02-20     식품저널

보람찬 같은 다수량 가공용쌀이 정착되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정부가 일반 타품종 밥쌀과 혼합해 싸게 파는 부정 유통이 생길까봐
철저하게 통제하는 정책을 폄으로써 시장이 커지지 못했다고 본다. 
그러나, 가공용쌀은 밥쌀보다 품질관리, 품종별 구분관리를
더욱 철저하게 해야한다 

여러 종류의 쌀가공식품. 사진=식품저널DB

가공용쌀 문제는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이물만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공급하는 가공용쌀 품질 문제는 언젠가 이슈화될 수 있는 매우 오래되고 깊이 잠재되어 있던 문제였다. 가공용쌀 문제는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이물만 문제가 아니다.

정부양곡으로 수매할 때 품종 구분을 하지 않고 쌀을 수매하기 때문에 여러 품종이 혼입돼 고품질을 요구하는 가공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일부에서는 구분한다는 곳도 있지만, 그래봐야 전국의 모든 정부양곡이 품종을 구분해서 수매하는 것이 아니어서 도정과정에서 품종 구분이 안 된 쌀과 구분된 쌀에 섞이는 순간 구분의 의미가 없게 된다. 가공용쌀이라는 개념이 생길 때부터 이런 품질관리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가공용쌀은 질 낮은 묵은 쌀(구곡)을 가공용으로 싸게 공급하고, 밥쌀은 고품질로 유통시킨다는 이원화 정책으로 인해, 밥쌀로 유통되는 쌀은 당연히 색채선별기, 이물관리기 등을 거쳐 만들고 있지만, 가공용쌀은 식품저널 기사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고 지금까지 유통돼온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쌀 유통 이원화 정책의 배경에는 첫째 ‘가공용쌀은 저렴하게 파는 것이니 품질은 좀 떨어져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과거에 싸게 공급되는 가공용쌀을 밥쌀과 혼합해서 판매하는 업자들이 있었기에 가공용쌀을 구태여 품질을 높여 관리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실제로 ‘보람찬’과 같은 다수량 가공용쌀이 정착되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정부가 일반 타품종 밥쌀과 혼합하여 싸게 파는 부정유통이 생길까봐 철저하게 통제함으로써 시장이 커지지 못했다고 본다. 그러나, 가공용쌀을 사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가공용쌀은 밥쌀보다 더욱 철저하게 품질관리를 해야 좋은 품질의 쌀가공식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정한 수분 함량과 쌀가루 입도, 단백질 함량, 회분관리 등 가공할 때 필수적인 핵심 품질관리 요소가 항상 일정하게 관리되어야 원하는 품질의 쌀가공식품을 만들 수 있다.

쌀국수나 쌀빵을 잘 만들고 싶어도 원하는 수준의 품질이 나오지 않는 것은 가공용쌀의 품질관리가 제대로 잘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쌀가루 품질을 분석해보면 같은 품종이라도 생산자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쌀로 만든 전통주. 사진 =식품저널DB 

아무리 실험실에서 최고로 맛있는 쌀빵 레시피, 쌀국수 레시피를 만들었다 할 지라도 현재대로라면 가공용쌀과 쌀가루 품질이 롯트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기대한 품질을 구현할 수 없게 된다. 

일본에 가면 곳곳마다 쌀빵이나 쌀국수를 잘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일본은 쌀 가격이 비싸서 시장 확대에 어려움이 있을 뿐이지, 품질에 대해서는 유통관리가 잘 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제품을 다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별 문제가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공용쌀뿐만 아니라 밥쌀도 쌀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품질관리가 되지 않은 원료 쌀로 쌀가루를 만들어봤자 정부가 그토록 열망하는 수준의 쌀국수나 쌀빵이 나올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정부는 그게 다 품종탓이라며 더 비싼 가루쌀을 보급하고 시장을 넓히겠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품종이 아니고 그동안 방만하게, 또 구시대적으로 운영해온 정부양곡 및 쌀 유통시스템이다.

그래서, CJ제일제당 등과 같이 쌀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기업들은 일정한 쌀 품질관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면서, 정부 기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체 설정한 품질규격대로 계약재배해 쌀을 조달한다.

계약재배하여 생산되는 쌀은 시중에 유통되는 일반 쌀과는 품질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이런 쌀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고, 구매가는 오히려 더 저럼할 수 있다.

대량의 쌀을 안정적으로 구매하니 생산농가에서는 가격을 더 싸게, 품질도 구매처 요구에 맞춰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쌀가공품식품들이 품질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가공용쌀 품질로는 원하는 수준의 쌀빵이나 쌀국수를 만들기가 쉽지 않고, 그나마 품질 문제를 가장 최소화하여 사용할 수 있는 품목이 주류나 쌀우유 등 마시는 식품유형이다. 빵이나 국수처럼 전분과 단백질 특성에 의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대량 소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그나마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가루쌀 보급 정책을 처음 들었을 때 정부가 아직도 문제의 본질이 뭔지 모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행 정책대로라면 어떤 노력을 하든, 어떤 품종을 개발하든 지금처럼 떡이나 장류, 주류 등의 용도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선진국형 농업을 하려면 현행 정부양곡 시스템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현행 법령(양곡법)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 최대의 쌀장수와 같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급하는 쌀에서 이물이 나오고, 쌀에 싸라기가 섞여 있는 등 품질관리를 제대로 못하면서도 수요처에 그냥 알아서 쓰라고 한다면 구조적인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민간 쌀유통업자라면 이런 식의 갑질은 할 수가 없다. 품질이 나쁘면 수요처에서 거래를 먼저 끊어버릴 테니까. 관계당국 공무원들이 뭐가 문제인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우리보다 정부가 양곡 유통 독점을 풀고 민간에 이양하는 시기는 늦었지만, 품종과 품질 중심의 유통관리 시스템을 바탕으로 아이디어 넘치는 스토리 마케팅을 해서 일본의 쌀 전문점 아코메야(Akomeya)와 같은 유의미한 성공사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소비자 취향을 맞추기 위한 마케팅 활동을 열심히 했기에 이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쌀 전문점 '아코메야'. 사진=아코메야 홈페이지

시장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품질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소비자를 무시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정부양곡 가공용쌀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정광호 아이엔비솔루션즈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