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산책] 이름의 마력

사물에 붙여진 이름만으로 우리는 그 형상은 물론 그의 특성까지도 연상하게 된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93)

2022-12-28     식품저널

이 세상 모든 사물에는 그들의 특성에 어울리는 이름이 붙여졌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 느낌 등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적절한 말과 이름이 선택되어 있다. 각각의 이름과 감정 표현 수단이 없다면, 서로 간 의사전달과 내 뜻을 알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동물들은 손짓이나 발놀림으로 자기 뜻을 전달하기도 하고, 독특한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알리기도 한다. 심지어 식물도 자기 이름은 스스로 필요 없지만, 각기 다른 색깔과 향기로 자기 존재를 상대에게 전달한다. 또한, 자손 번식을 위하여 벌과 나비를 끌어들이는 수단을 동원한다. 

그런데 인간같이 대상의 이름을 지어 같이 공유하는 경우는 없다. 사물에 붙여진 이름만으로 우리는 그 형상은 물론이지만, 그의 특성까지도 연상하게 된다. 장미라고 불렀을 때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 아름다운 색으로 단장한 자태와 감미로운 향기 하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뾰족하게 솟아 있는 가시와 붙어있는 잎사귀까지 상세하게 머리에 떠올릴 수 있다. 어떨 때는 가시에 찔렸던 기억까지 같이 올라온다. 자기가 맡아본 향기도 연상하는 장미 종류에 따라 다르게 머릿속 저장고에서 끄집어낼 수 있다.

소나무 하면 어떤가. 갑자기 강원도 산골에서 만났던 금강송의 우람하고 곧으며 의젓함이 머리에 금방 떠오른다. 소나무 숲에서 묻어나는 숲의 향기는 지금 이 자리에서도 머릿속에서 다시 느낄 수 있다. 송진을 손으로 만져본 사람은 그 끈적거림과 독특한, 향긋한 송진 냄새에서 또 다른 정취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소나무 낙엽을 긁어모아 놓은 갈퀴나무(솔가리)를 아궁이에 태울 때 내는 불꽃과 그 독특한 향기로운 냄새는 수십 년 전 고향 부엌으로 나를 끌고 간다. 이런 마력은 이름이 아니면 내 감정을 불러낼 수가 없다.

식물은 물론이나 동물도 비슷한 영상이 떠오른다. 닭을 연상하면, 시골집에서 키워 본 사람이면 재빠르게 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닭의 모습과 장닭의 긴 울음소리며, 알을 낳았다고 꼬꼬댁 외치는 암탉의 우렁찬 소리가 귀가에 와닿는다. 지금 젊은이들은 닭튀김을 연상할까? 조금 살벌하다. 참새의 짹짹거리는 소리 하며 종달새를 속으로 불러보면 하늘 높은 데서 독창회를 하면서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 잔디 덮인 넓은 초원으로 나를 초대한다. 종달새라는 그 이름을 끌어오면 바로 연상되는 것이 잿빛 섞인 깃털 하며, 솟구쳐 오르는 날갯짓 등 한둘이 아니다. 종달새 둥지에 낳아놓은 점박이 알이 언뜻 떠오르고, 사람이 다가오면 어미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주위를 맴도는 모습이 어제일 같이 생각난다. 

집에서 키웠던 진돗개 피가 섞인 우리 집 지킴이 럭키는 우리 가족에게 그 말만 전해도 아련한 추억이 알알이 쏟아져 나와 어제 일 같이 감정을 함께 할 수 있다. 그 이름이 가진 마력이다. 돌림자를 따르는 형제자매 간의 이름은 어떤가. 성과 이름에서 한 자만이 다른 데도 그 이름을 부르면 형, 누나, 동생의 이력이 머릿속에서 금방 엮어져 나온다. 이런 것을 추억이라고 하는가. 같이 크던 어릴 때 기억은 물론이고 근래 만났던 모습까지 생생하게 영상으로 비친다. 근래 가장 아쉬운 것은 이들 이름이 서서히 머릿속의 기억 창고에서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분명 내 머릿속 창고 속에는 들어있는 것만은 아는데. 

요즈음 딸애 이름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이제 손녀까지 이어지는 영상이 함께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 때의 모습과 머리 싸매고 입시를 준비하는 모습, 성인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밤늦게 귀가하는 것을 걱정했던 생각, 그리고 결혼하여 다복하게 교수로, 대기업 책임자로 일하는 제 남편과 오붓하게 사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그 이름에서 묻어나는 감정들이다. 가끔은 손녀 이름을 떠올려 본다.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이 내 마음 영상 가득 잡힌다. 그 이름 하나를 불러보았는데 거기에 묻어나는 갖가지 이어지는 마음속 그림은 이름과 연결된 것이다. 외국에 살고 있으니 그냥 이름이나 뇌어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네 이름값을 하라고 다그친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네 아비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는 경고, 이름에 값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태어나면 이름 짓는 것에 깊은 관심을 둔다. 그 이름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기도 하니. 나와 이때까지 함께해온 내 이름도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내 이름을 불러보시는 할아버지께서 책력과 사주팔자 알아내는 귀한 책을 놓고 지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정성 들여 지어 주신 이름에 걸맞은 제값을 했는지 속으로 가늠해본다.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과 동식물, 그들의 이름을 되뇌어보며, 자기가 가진 본래의 모습과 이름이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 각국에는 수백에 이르는 언어가 있고 그 언어에 걸맞은 사물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그 이름에 따른 언어의 주인별 소리는 다르나 내면에 품은 뜻은 같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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