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또는 핸드메이드를 내세우면 대체로 장인이 꼼꼼하게 정성을 들인 최고의 품질의 가진 제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식품은 해당 분야의 장인이 만든 것보다 개선된 공정과 좋은 장비로 만들었을 때 품질이 좋은 사례가 의외로 많다.

식품 관련 소상공인들이 많이 쓰는 콘셉트 중에 수제식품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제조자가 직접 원료를 처음부터 손수 가공해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는 콘셉트이다. 여기에 일체의 조미료나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붙이면 소비자들에게는 고급 메뉴로 인식되어 비쌈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 팔린다. 소비자들은 수제식품이라고 하면 그 식품에 들어간 정성 때문에 더 맛있고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기대와 달리 실제로는 최소한의 가공 도구를 이용해 손으로 직접 생산하므로 아쉬운 점이 쉽게 발견된다.

전통 가공방식은 생고생 유발 공정
옛날 가공설비가 없던 시절, 많은 사람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대량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용하는 조리도구에 한계가 있고, 개방된 공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염 물질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옛날 방식대로 조리해야만 전통이라면서 동경하는 경향이 있어 옛날 방법대로 조리한 식품은 품질에 상관없이 인기를 끌 수 있다. 요리는 문화이고, 시대상을 반영해 변한다. 옛날 조리방법은 흥미와 관심 영역에 그쳐야지, 이것이 옳은 것, 좋은 것이라는 인식으로 고착되어서는 곤란하다. 

예전에 가공설비가 개발되지 않았을 때는 사람이 직접 고된 노동을 해서 만드는 식품이 많았다. 포도주는 포도를 세척한 다음 으깨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고대 로마에서는 노예들에게 하루 종일 밟아서 으깨도록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만약 노예가 없었다면 포도주는 분명히 매우 귀한 식품이 되었을 것이다. 고대 로마로부터 한참 지난 근대에도 식품을 만들기 위한 고된 노동은 사라지지 않아서 버터를 만들 때는 하인, 하녀들이 하루종일 우유가 든 항아리를 막대로 계속 때려야 했다. 우유를 막대기로 때리다가 유지방 구가 막대에 맞거나 항아리를 때려서 발생하는 진동으로 유지방이 단백질과 분리되어 유지방 구가 깨져버린다. 유지방은 이렇게 깨진 유지방 구로부터 분리되어 상부 표면으로 뜨게 되는데, 이렇게 우유를 막대로 때리는 과정을 쳐닝(chunning)이라고 했다. 1878년 크림 분리기가 발명되면서 버터를 먹고 싶어하는 주인집 하인과 하녀는 그동안 그들을 괴롭혔던 고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전통 차 가공기술은 옛날 구증구포라하여 아홉번 덖고, 아홉번 말려 만드는 가공방식이다. 전통차 가공 도구를 보면 손에 장갑을 끼고 찻잎을 뜨겁게 달군 구형 용기에 문지르고 비벼댄다. 이것이 전통 차 가공방식이다. 이후 유념이라 하여 덖은 찻잎을 비벼서 수분이 찻잎에 고르게 퍼지도록 하는 과정을 거친다. 찻잎은 뜨거운 팬에 닿아 순간적으로 수분이 날아가는데 이때 유념을 거치면 덖을 때 발생한 찻잎 안에 불균일한 수분분포가 고르게 해소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통을 돌려가며 고르게 볶을 수 있는 장비가 없어서 찻잎을 바깥에서부터 조금씩 뜨겁게 달군 팬에 접촉시킬 수밖에 없었다. 덖는 과정을 너무 오래하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일의 특성상 차가 너무 뜨거워져서 더 이상 덖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찻잎은 한 번에 조금씩 덖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가열된 통돌이 팬이 자동으로 돌아가면서 고르게 덖을 수 있는 장비가 있어서 굳이 통에 손을 넣지 않고도 지속해서 덖을 수 있게 되었고, 온도조절감지기까지 설치해 자동으로 온도를 맞춰줄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옛날과 비교하면 차를 덖는 시간이 1/10 이하로 줄어들게 되었다.

전통방식을 채택해서 품질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개선된 현대 가공법을 채택하지 않고 생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까 전통가공기술은 품질 문제라기보다는 신념의 문제인 것 같다.

원리를 알면 굳이 수제를 고집할 필요 있을까?
메이플 버터라는 식품이 있다. 메이플 시럽으로 만드는 버터 형상의 음식이다. 메이플을 끓인 후 식을 때까지 400번 이상 휘저어서 만든다. 일전에 모 TV 프로그램에서 메이플 시럽을 소개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고, 몇몇 요리 블로그 등에 등장하며 인지도가 높아졌다. 작년에는 메이플 버터를 사용한 치킨 메뉴가 시판되면서 다시 한번 소비자들에게 알려진 식품이다. 메이플 버터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메이플 시럽을 한 번 끓인 다음 식을 때까지 거품기를 사용하여 400번 이상 빠른 속도로 휘저으면 쫄깃한 형태로 굳게 되는 데, 이것을 그대로 식혀 만들면 된다. 

당류로 디저트를 많이 만들어 본 사람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메이플 시럽 내에 과당, 포도당이 고온에서 녹았다가 식으면서 Beating에 의해 결정형성이 방해받아 생성되는 폰단트(Fondant)의 일종이다. 폰단트는 다양한 제과 디저트 원료로 쓰이는데, 대표적인 것이 추잉 캔디, 캐러멜 등이다. 폰단트의 원리를 안다면 손으로 거품기를 사용하기보다는 끓인 메이플 시럽을 제빵용 반죽기로 고속 회전시킴으로써 간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전기기를 사용하여 만든 제품은 수제일까? 아닐까? 

수제 가공식품은 품질보다 정성
수제가공식품은 가공설비로 만드는 것보다 품질이 떨어지기 쉽다. 과일잼은 공장에서 가공설비로 만드는 편이 집에서 손수 끓여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 맛있다. 잼 가공설비로 만들면 저온에서 진공농축과정을 거쳐 만들기 때문에 잼 안의 당분이 거의 갈변되지 않고 신선하다. 수제잼은 가열하면서 끓여 농축하는데, 이때 잼 안의 당분은 캐러멜화 반응이 일어나 풍미가 변하게 된다. 농촌지역을 돌아다니며 잼 가공기술을 알려주고 있는데, 가공설비로 만든 잼이 집에서 끓여서 만들었던 잼보다 훨씬 좋은 품질에 놀랐던 경험을 한 두 번 하는 것이 아니다. 

수제 또는 핸드메이드를 내세우면 대체로 장인이 꼼꼼하게 정성을 들인 최고의 품질의 가진 제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식품은 해당 분야의 장인이 만든 것보다 개선된 공정과 좋은 장비로 만들었을 때 품질이 좋은 사례가 의외로 많다. 그럼에도 소비자는 수제식품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인식할 수가 있다. 소비자는 선입견 때문에 실제 본인이 선택하려고 했던 더 좋은 식품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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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 ㈜아이엔비솔루션즈 대표이사는 서울대학교 농화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해태제과 식품연구소와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아이엔비는 미강 등 국산 농산자원 유래의 바이오 소재 연구개발 전문기업이다.

식품저널 2021년 7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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