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99)

 

힘겹게 뿌리 내리고 햇빛 향해 힘차게 뻗고 있는 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자세 필요

새마을 운동을 시작으로 좁은 동네 고샅도 넓히고 그 위에 정부에서 지급한 시멘트로 포장하여 다니기 편하게 바꿨고 경운기 등 농기계 사용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이와 함께 이어지는 경제발전으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도시의 모든 인도에는 각기 다른 보도블록이 깔려 통행인을 편안하게 해 주고 있다. 자동차 길은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물 한 방울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완전히 덮여 대지와 흙을 단절시켜버렸다.

촘촘히 이어진 보도블록은 아주 좁은 틈새가 있어 그사이에 조금씩의 흙이 쌓여 바닥에 받치고 있는 땅과 연결통로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 보도블록을 걸으면서 눈에 띄는 풀들을 본다. 그 좁은 시멘트 덩어리 사이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의 통행이 조금 뜸한 인도는 어느 곳에도 블록 사이에서 풀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흔히들 끈질기며 지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을 잡초 같다고 비유한다. 잡초라는 비유를 나는 기본적으로 무척 싫어한다. 풀에도 등급의 구분이 있는 것인가. 잡초의 ‘잡’ 자는 비하하는 뜻이 담겨있고 주어진 이름까지도 불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거나, 그 이름을 잘 모르니 그냥 뭉뚱그려 쉽게 치부해 버리는 것이라 여겨서 기분이 언짢다. 보통 사람에게도 ‘잡놈’ 혹은 ‘잡것’이란 험한 말을 쓰기도 하는데, 아마도 옳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못된 짓을 하는 부류의 사람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사람은 사리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을 갖고 선악을 구별하여 행동해야만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보편적인 기준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잡스럽다는 험한 대접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의지와 선악의 구별이 전연 없는 식물의 경우 인간의 기준으로 잡초, 잡풀이라 분류하는 것은 결코 식물을 제대로 대접하는 태도가 아니다. 더욱 그 열악한 환경, 보도블록 사이에서 온 힘을 다 쏟아 생명을 지켜가는 끈질기고 당찬 풀을 보면서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질경이와 강아지풀, 괭이밥까지 눈에 보이면 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격려하고 힘을 보태주고 싶다. 어느 험한 환경에 처해서도 망설임 없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피나는 투쟁, 어찌 나약한 인간과 비교가 되겠는가.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우리 속담은 어려움을 겪어봐야 그 고난을 이길 힘을 비축할 수 있다는 깊은 뜻이 있다.

입지전적인 생을 살아온 사람치고 금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은 없다. 모두가 흙수저도 아니고 그 수저마저도 없이 혼자서 나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다. 그분들은 보도블록 사이에서 온 힘을 다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불굴의 식물을 보면 동료의식이 발동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느 때 보도블록을 들추고 공사하는 현장에서 관심 있게 보면 놀랄만한 현상이 눈에 들어온다. 위에 나온 잎사귀는 그렇게 크지 않은데 밑에 뻗어 있는 뿌리는 잎사귀의 몇 배의 길이가 된다. 이 긴 뿌리의 힘으로 위에 자라고 있는 잎사귀가 견디고 험한 주위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인간의 삶도 비슷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어려움과 역경을 견디고 이겨낸 사람만이 정신의 내면에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기둥을 세우는 계기를 만든다고 여긴다. 오늘을 사는 많은 기성세대는 험난한 전쟁을 경험했고, 배고픔과 가난의 고통이 깊은 삶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기회를 주었으며, 그 힘이 현재 우리나라를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등을 차지하는 분야도 많아졌지만, OECD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현실은 풀뿌리 정신이 결여된 결과라고 본다. 어려운 시기, 1970년대 이전까지 우리의 자살률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어려운 생활을 이겨내며 극복하려는 노력이 삶의 의욕을 오히려 북돋웠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너무 나약해졌고 새롭게 도전하려는 정신력을 갖출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제라도 한 번쯤 보도블록에 힘겹게 뿌리 내리고 햇빛을 향하여 잎을 힘차게 뻗고 있는 풀을 보고 배웠으면 한다. 생은 주어졌고 이 생을 보람 있게 가꾸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최종 선택은 내가 한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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