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92)

 

말로 하기 어려운 마음을 편지로 쓰면
정답고 더 감동을 준다

나만의 소식을 전할 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여 보낸 기억이 잊힐 듯 까마득하다. 공식서류나 부피가 있는 소포를 보내려 우체국을 가끔 이용하지만, 개인적인 내용을 담은 손글씨 편지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손안에 들려있는 핸드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 육성을 바로 전할 수 있고, 카톡이나 메일은 즉시, 편리하게 내 모습까지 보낼 수 있으니, 손으로 글을 쓰고 다시 편지 부치려 우체국을 찾아가는 품팔이를 하는 번거로움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필요에 따라 변화한다. 요구하는 사람이 많으면 수요가 증가하고, 용도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결별해 시야에서 사라진다. 손편지도 편의성, 즉시성이 없고, 번거로움으로 자연스레 소멸해가는 중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상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기록하려는 욕구는 태초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원시인이 어렵게 남긴 암각화는 그때를 추정하는데 좋은 전달매체가 되고 있다. 즉, 물질이 아닌 정신영역의,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여 그림이나 글로 남기는 것이 훨씬 정답고, 내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말로 하기 어려운 마음을 편지로 쓰면, 정답고 더 감동을 준다.

내 경우도 이제 편지 쓸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내가 나에게 쓰는 매일의 편지, 일기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과가 되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숙제로 내주신 것이 습관으로 베어 버렸나 보다. 논산훈련소에서도 윗주머니에 들어가는 수첩에 그날 했던 일과를 몇 자로 줄여 기록하였다. 지금 그 수첩을 보면 그 옛날로 돌아간다. 땀과 빗물에 젖어 얼룩으로 어떤 부분은 잘 보이지도 않는데, 충분히 내가 간직한 기억 속에서는 그때를 쉽게 유추할 수 있고, 그 정황을 다시 그려볼 수 있어 몇 줄의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결코 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 없으리라.

글씨체 하며 옆에 묻어있는 얼룩 등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가끔 그때의 느낌을 가슴으로 안아보고자 수첩을 펼쳐보면서 회상에 젖곤 한다. 그렇다. 우리가 친구나 가족에게 보내는 종이에 쓴 편지는, 물론 그 편지에 담은 글도 중요하지만, 사용한 편지지하며, 쓴 글의 나만의 필체 그리고 전체에서 풍기는 느낌 등은 전자편지나 카톡에서는 결코 감지하지 못하는 감정이 담겨 있다.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편지지를 고르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가 좋아하는 향까지 뿌리는 정성을 쏟는다. 몇 번을 고쳐 쓰는 것은 예사이고, 어른에게 보낼 편지는 자구하나 틀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쓰는 것은 당연하나, 처음 인사말을 어떻게 시작하며, 마무리에서 내 품은 정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곤 했다. 더욱 용돈을 보내 달라는 편지는 더 신중해진다.

외국에 유학하던 시절, 안사람에게 보낸 봉함엽서의 내용을 읽다 보면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의 외로움이 글과 편지의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그냥 편지로 하면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내용을 덮을 수 있는 봉함엽서, 지금도 그 색깔 하며 쓴 글씨에서 오는 감정을 다시 되새길 수 있어 좋다. 이런 느낌을 전자편지나 타이핑한 글씨에서는 전연 감지할 수가 없을 것이다.

편지에 붙인 우표는 어떤가. 물론 수집가는 아니지만, 그 당시 그곳에서 사용되었던 우표는 편지 보내는 품삯이 당시의 화폐가치와 지금 것을 비교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우표는 보통 침을 발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고, 하나도 스스럼없이 혀를 날름거려 붙일 준비를 했으니.

시대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지만 지나온 세월에 묻힌 우리의 생각과 사고 그리고 그때의 분위기 등등은 결코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그 시대를 산 사람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모든 습관과 관습, 당시에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으나, 현재는 그냥 과거로 묻히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지금 유행하고 당연시하는 우리의 일상이 몇 년 후에는 그냥 희미한 기억 속에 남는 영상의 한 조각이 될 것이다. 잊혀가는 일부 기억은 우리의 역사로 기록될 것도 있겠지만, 영원히 다시 못 온다는 것에 조금 아쉬움은 있으나, 또 다른 내일이 오고 그 시간이 새 장을 연다는 것에 위안으로 삼는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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