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89)

 

어머님의 빔 덕으로 내가 있다는 것에 감사
사라져버린 것이 소중하게 생각난다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우리 삶에서 신비함이 없어져 버린 아쉬움이 남는다. 달을 보면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동화는 어릴 때 많은 것을 상상하게 했고, 보름달을 보면서 소박한 소원을 빌었다.

하늘에 떠 있는 북두칠성과 좀생이별을 세면서 점을 치고, 또 내 별을 점찍어 매일 대화를 한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동녘 하늘에 밝을 때까지 남아있는 샛별은 상상의 나래를 펴기에 좋았다.

이런 신비가 과학의 힘으로 하나씩 하나씩 가려진 베일이 벗겨졌다. 가려져 알지 못했던, 장막이 사라진 민낯을 보고 있다. 신비의 달에는 이미 인간의 발자국을 남겼고, 그 많은 별의 생성이나 소멸의 역사는 과학교과서에 자세히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주위에서 듣던 신비한 이야기들이 과학세계로 들어오며 그냥 앎의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사실로만 남게 되었다. 예전에는 우리 주위에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18세기 전까지만 해도 질병의 원인은 귀신이나 하늘의 노함이라고 믿었고, 서양에서는 미아스마라고 하며 나쁜 독기가 들었다고 여겼다.

우리 주위에 겨우 100여 년 전만 해도 산 고개에는 서낭당이 있었고, 고개를 넘을 때마다 돌을 주워 돌무덤에 던지면서 내 건강과 안녕을 빌었다. 그리고 산에는 산신령, 바위에도 특수한 기운이 있어 우리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 두 손 모아 기도하였다. 순수한 마음으로. 집안에 우환이 들면 드물게 있었던 한약방보다는 점집을 찾고 굿을 하여 악귀를 쫓아내는 방법으로 귀신을 달래는 방법을 썼다.

집안으로 들어오면 어떤가. 구석구석에는 집을 지켜주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대문을 지키는 문전신, 집안의 재산목록 1호인 소가 거주하는 외양간에는 우마신이 있어 보름에는 한 상 차려 대접하였다. 가족이 먹는 음식을 준비하는 중요한 자리인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셨고, 입춘에는 조왕신에 바치는 글도 써 붙였다.

할아버지가 써주시는 한지 축문, 정조오미 반등팔진(鼎俎五味 盤登八珍)을 정성스럽게 부엌(정지) 큰솥 맞은편에 붙이는 것은 내 몫이었다. 지금도 장독대에는 부정을 물리치는 쌈 줄을 치는 습관이 남아있는데, 이곳은 청륭신이 관장한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의 귀에 익은 삼신은 새 식구, 아이를 점지해주는 신이고, 대부분 북두칠성 중 하나의 별이 여기에 속했다.

자손이 없는 집의 삼신은 귀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집안의 여러 신 중에서 가장 으뜸은 성주신이고, 성주신에게 잘 보여야 집안이 편안하고 번성한다고 믿었다. 초가집에 살고 있었으니 가끔은 구렁이가 초가집 볏짚 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때가 있었다. 이때는 집안의 업이 나왔다 하여 음식을 차려놓고 온 식구가 정성스레 손을 비비며 기도하고 절을 하면서 잘 돌아가시라는 염원을 올리곤 하였다.

옛 우리 삶에서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도 있었으나, 자연히 일어나는 변화도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고, 우리가 모르는 절대자, 신의 역할이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들 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잘 보이려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특히 정월 초 뱀날에는 뱀 방애라고 하여 사(巳), 이삼만(李三萬), 백사(白巳) 등을 붓으로 한지에 써 뱀이 나올만한 곳에 거꾸로 붙여 뱀의 침범을 막기도 하였다. 또한, 섣달 그믐날은 곳간, 뒷간(화장실), 부엌 등 모든 어두운 곳에 등불을 밝혀 귀신의 접근을 막았다.

이때는 실로 신과 사람의 간격이 없었고, 같이 살면서 화나지 않게, 편하게 모시려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자식들이 출타하여 집에 없을 때는 어머님은 항상 정화수를 장독대에 올려놓고 한밤중(자시)에 북두칠성을 향하여 두 손 빌면서 아들, 딸의 안녕을 빌곤했다.

전깃불이 보급되면서 주위에 있는 모든 신과 도깨비가 자취를 감추었지만, 어릴 때 같이, 곁에 살았던 그 많은 신이 어떨 때는 그립고 없어짐에 아쉬운 여운이 남기도 한다. 어머님의 정화수와 빔의 덕으로 오늘까지 건강을 잃지 않고 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사라져버린 것이 소중하게 생각난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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