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87)

 

내 나라, 내 고향 연상시키는 소나무
우리 감성의 바탕 만들어주는 버팀목

소나무를 보면서 친근함을 느끼지 않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앞 뒷산에 자리한 흔한 소나무는 평범한 나무가 아니다. 우리의 얼이 깃든 대상이요, 민족의 동질성을 유발하는 매체로 긴 세월 큰 역할을 해왔다. 많은 사람은 소나무를 근거리에서 보면서 함께 자랐고, 송순이 뻗치는 모습과 노란 송홧가루가 날리는 봄날 그리고 겨울의 솔방울에서 느린 사계절 변화되는 모습으로 절기를 새삼 느끼곤 했다. 물론 이 나라의 자연환경과 토양에 절묘하게 어울려 자라는 여건이 맞았겠지만, 수천 년 더불어 우리 곁을 변함없이 꿋꿋이 지켜준 소나무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긴 역사와 함께 수천 년 동안 문학, 예술, 종교는 물론이요. 민속과 풍수사상에도 그 정신이 속속 녹아들어 있다. 절의 윗자리에 있는 산신각의 신선도에는 호랑이와 함께 소나무가 꼭 있어야 하고, 모든 선형을 모신 산소에는 수백 년 된 노송이 버티고 있어야 제격이며, 조상의 연륜에 어울리게 긴 세월을 품어 안고 우아한 자태로 품격을 높인다.

소나무는 우리의 정신과 정서의 밑바탕에 자양분을 주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꿋꿋함과 절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우리 가슴 속을 채워주고 있다. 우리 조상은 소나무를 상징 삼아 장생, 절조, 기개를 노래했고, 우리가 가져야 할 사람으로서 품격을 쉽게 비유하기도 했다.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는 다섯 가지 자연물인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골랐고, 벗할 상대로 소나무를 뽑았다. 그렇다. 친구로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지.

소나무는 여러 품종이 있겠지만, 최고급 수종인 금강송은 고급건축이나 조각에 가장 널리 쓰이고 있으며, 궁궐이나 국가 주요 목재건물의 기본자재로 일등 자리를 차지해왔다. 이들 귀한 소나무 외에 척박한 산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라 하더라도, 수천 년간 우리에게 정신적인 면과 함께 물질적으로 실로 많은 혜택을 주어왔다.

연료가 부족한 어려운 시절에 땅에 떨어져 마른 솔잎(솔가리)도 겨우내 필요한 땔감이 되어 주었고, 긴 밤에 조명이 어려웠던 시절 관솔은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불빛이었으며, 송진은 의약용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또한, 씨 퍼트림을 끝낸 솔방울은 겨우내 난방과 조리에 사용하는 연료로 큰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별미이지만 굶주림에 고통 겪던 시절, 소나무 안 껍질인 송기는 허기를 채워주는 좋은 식재료였고, 지금은 송기떡이나 송기송편은 별식으로 우리 입맛을 새롭게 옛날로 끌고 가는 인도자가 되고 있다.

소나무는 소나무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은 각자 다른 이야깃거리와 추억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외국여행 중에도 낯선 산에 소나무가 보이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금방 두고 온 내 나라, 내 고향을 연상시키는 매체가 되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이런 힘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도시에서 성장기를 지낸 젊은이들에게는 소나무에 대한 추억이 덜하겠지만, 요사이 가로수로 소나무를 가꾸는 도시가 많아져 훈훈한 마음이 든다. 소나무도 식물의 하나이지만, 소나무가 우리의 감정에 끼치는 영향은 어느 식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마도 가장 가까이에서 많이 보았고 특히, 초록이 귀해지는 겨울에 그 청청함을 뽐내면서 우아한 자태를 보이는 것에 깊은 인상을 아니 받을 수가 없다. 더욱 조용한 사찰, 눈을 이고 있는 노송의 머리는 어찌 감탄하지 않겠는가. 그 눈의 무게에 굴하지 않고 자태를 그대로 지키면서 견디는 강인함에 또 다른 교훈을 얻기도 한다.

근래 소나무 선충의 피해로 누렇게 변색한 소나무가 산속에서 눈에 띄는 것을 보면 가슴에 서늘한 기운이 돋는다. 더욱 기후변화로 온난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나무 특성으로 점점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본성을 잃지 않는 청청한 소나무 숲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깊은 교훈을 주고 있는 소나무, 이 나무는 식물의 나무가 아니라 우리 감성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우리 곁에 소나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송순주도 즐기고 송화다식의 우리 전통 얼의 진수를 계속 만나고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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