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84)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
결코 가벼운 얘기 아냐

미래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니 내 운명을 미리 알고자 인류의 유사 이래 계속 노력해 왔다. 점을 보고 사주를 풀어 앞일을 미리 알고자 하는데, 과학이 발달한 현재도 이런 바람은 수그러들지 않나 보다.

우리 집안도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대가족이었고 제일 밑, 손자인 내 경우도 설을 쇠고 나면 할아버지께서 새해 나온 책력을 펼쳐놓고 내 생시를 맞추고 가보로 간직한 토정비결 책을 조심스럽게 펼치신다. 올해의 손자 운수를 점치기 위함이다.

손자, 손녀가 많았으니 기억하기에 순서를 정해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기셨다. 우리는 심판받는 경건한 몸가짐으로 할아버지께서 올해의 운세를 읽고 해석까지 해주시니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보통 월별로 나눠 유월은 물을 조심해야 하니 물가에 가지 말고, 구월은 목(木)씨 성을 갖는 사람은 조심해라, 그리고 동쪽에 길한 기운이 있으니 동쪽으로 움직이는 게 좋겠다. 조금 나이 먹은 아들이나 손자에게는 혼사 운까지 곁들이니 그 기대가 만만치 않았다. 해에 따라서는 좋은 운이 많을 때도 있었고, 한해를 극히 조심해야 할 괘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련한 추억이고 할아버지의 정이 따뜻이 느껴지는 순간을 맞기도 한다. 그런 기억 속에 마음 한구석에만 오래 묻혀계셨던 할아버지를 내 현실 속 그리고 가슴으로 다시 안아볼 수 있으니,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할아버지가 쓰시던 쾌상이 우리 집 거실에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속에 손때 묻은 벼루와 붓이 있어 대면이 가능하니, 이 어찌 행운이 아니랴. 쾌상에 귀를 대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고 정이 듬뿍 담긴 말씀이 귓전에 울린다. 또한, 긴 대나무 담뱃대로 피우셨던 담배 연기가 코에 닿는 느낌을 실감 나게 되살릴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앞날을 알고자 하는 바람이 강하였고, 살고 있는 근방 동네에 당골어미(무당)가 있어 한 집안의 길흉을 점쳐주면서 흉액을 막을 방도를 알려주었다. 간단한 막음, 보름날 밥 한 그릇을 어디에 갖다 놓아라 든지 혹은 오색 실과를 준비, 어찌어찌하라는 지시가 있으면 어머님은 그 얘기를 충실히 따랐다. 자손의 일이니 참 순수한 믿음으로 모든 정성을 들였고, 그렇게 되리라는 신념이 강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이렇게 깊이 뿌리를 둔 생각들이 이어져 지금도 점집이나 사주풀이 집이 있고, 새로 태어나는 아들이나 손자 손녀가 있으면 작명 집에 가서 좋은 이름을 선택받아 그들이 평생 사용할 이름으로 정한다. 나도 늦게 안은 외손녀의 이름을 짓기 위하여 작명소를 찾았고, 그 이름을 호적에 올렸으니, 손녀가 이해할 나이가 되면 그 사연과 좋은 운을 알려는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좋은 예측이니.

동양에서는 주역이 점괘 풀이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데, 결코 사주풀이에 한정된 얕은 내용이 아닌 철학서인데도 주역을 통달하면 사람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의 운명을 가늠할 수는 있으나, 우주의 운행과 현실을 조화하고, 깊은 사물의 이치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명리학이라고 하여 이 분야를 한 연구영역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니, 이 또한 인간의 앞을 미리 알고 싶은 욕망이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증거이다. 서양에서도 마술 구슬이 있어 미리 일어날 일을 얘기해 주기도 하고, 우리 점집 같은 것이 있다니, 인간의 앞일을 알고자 하는 심리는 동서양 비슷한가 보다.

그럼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얼핏 보았던 법륜 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여기면 있을 수가 없다는 말씀. 공감한다. 즉 내 마음속에서 받아들이면 그렇게 될 수 있고, 그것을 스치면 현실로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내 믿음이 강하면 그렇게 나를 끌고 가고, 그 힘이 약하면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여러 성현께서 일러주신 것은 결코 가벼운 얘기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좀 나이가 들어 생각하니 내 사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데, 내 의지가 강했던 것은 그대로 이루어졌고, 그냥 흘러가는 물에 나를 맡기면 물이 이끄는 방향으로 갔던 것 같다는 것이 이제 남은 생각이다. 각자 나름대로 생각할 일이다. 인간은 운명, 그 이상의 존재임을 믿는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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